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초코숲 Sep 08. 2022

5. 요가원의 세면대가 낮았던 이유

요가로 인생 리듬 되찾기

본격적으로 휴직을 시작하면서 '생활 루틴을 유지해라'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갑자기 사용 가능한 시간이 24시간으로 늘어나면서, 자칫 침대에서 무기력하게 누워 있기 쉬움을 경계해라는 뜻. 다만 몸과 마음이 지친 관계로 크게 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문득, 요가를 배우고 싶었다. 원래는 근육을 늘려주거나 칼로리 소모가 심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가성비 없는 운동'이라고 여겼었다. 여성들의 운동이라는 편견도 있었다. 홀로 요가원에 들어가서 서로 괜히 민망하게 되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요가를 하기 싫은 이유보다 하고 싶은 이유를 찾게 되었다. 요가가 가지는 이미지인 '명상'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들었다. 그리고 학창 시절부터 공부와 컴퓨터 사용으로 망가져버린 어깨를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근방에 요가 수업을 하는 곳을 찾아보았다. 요가와 필라테스를 같이 하는 학원도 있었고, 요가만을 진행하는 요가원도 있었다. 다른 운동을 같이 하는 곳보다는 하나에 집중하는 곳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요가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요가가 처음인데 그냥 수강을 하면 되는 건지, 준비물과 복장은 어떤지, 아예 처음 접하는 운동이다 보니 궁금한 점이 많았다. 선생님은 실력은 전혀 문제없다는 말과 함께 운동복 차림으로 편한 마음으로 와달라고 말하셨다.



다음 날, 요가원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마음의 생체시계가 느려지고 있었다. 은은한 향의 내음,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어색해하는 나를 선생님이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배우려는 마음은 확고했기에 우선 등록부터 진행했다. 서식을 작성하다, '질병'란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생각하면 허리 디스크처럼 요가 동작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을 확인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칸을 보면서 마음의 질병을 이야기해야겠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우울증이 발생해서 휴직까지 했고,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 요가에 처음으로 도전한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정말 잘 오셨다는 말과 함께, 본인이 정신적으로 힘들던 경험을 공유하며 힘 내보자는 응원을 보냈다.


탈의실과 시설들을 둘러보다 세수를 하기에는 낮은 세면대를 보게 되었다. 요가원에서는 맨발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수업 전 족욕을 하고 수련을 시작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운동화를 신고 왔기에 양말을 벗고, 천천히 두 발을 씻었다. 매일 샤워를 하면서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두 발.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정성껏 발 구석구석으로 물을 끼얹었다.  신기하게도 발을 씻으니 마치 온몸을 씻은 것 같은 경건함이 느껴졌다.


이제 수업시간이 되었다. 평소 구석진 곳을 선호하던 것과 다르게, 중앙으로 향해서 가부좌를 틀었다. 이상하게 평소에는 그렇게 남 눈치를 많이 보는데, 가끔씩 이렇게 지나칠 정도로 당당해지는 스스로의 모습이 신기하다. 그만큼 요가라는, 아니 요가든 뭐든 상관없으니 지금의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이 그만큼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요가 수업은 '그동안 왜 나를 돌보지 않았냐!'라며 원망하는 몸이 고통의 형벌을 내리는 시간이었다. 동작을 따라 할 때마다 온몸의 통증이 느껴졌다. 헬스의 고통이 근육이 찢어지면서 생기는 찌릿함이라면, 요가의 고통은 굳어있던 몸이 펴지면서 잘근잘근 하게(?) 다져짐이었다. 가장 유사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니 유격체조에서 느끼는 부자연스러움이 기억난다. 아마 평소에 잘 쓰지 않는 근육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어 그런가 보다. 동작 하나하나에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했고, 마지막 휴식 동작인 '사바아사나'를 취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날 이후로 나의 평일 오전 시간표는 요가 수업으로 고정되었다. 처음에는 선생님과 수강생들의 동작을 흘깃 보면서 흉내 내기도 힘들었다. 동작을 어려워하는 (나를 포함한) 수강생들에게 선생님은  '할 수 없는 동작은 지나치게 힘쓰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호흡에 힘씁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문득, 살면서 항상 들었던 말과 조금은 다른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건, 회사에서건 항상 '최선을 다 해라'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와 같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말만 들었다. 그러나 요가를 하는 순간에는 누구와 경쟁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아닌, 스스로의 수련을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동작의 흐름도 세상의 정신없는 템포와 다르게 매우 천천히,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조금씩 마음의 편안함이 느껴졌다.


한 번은 동작을 취할 때, 벽의 왼쪽을 보던 평소와 달리 오른쪽을 보고 서 달라는 선생님의 주문이 있었다. 수강생들이 절반은 왼쪽, 절반은 오른쪽으로 서서 약간의 혼선이 있었다. 다소 소란스러웠던 동작이 끝나고, 선생님께서 수강생들에게 말했다.

지금 제가 평소와 달리 오른쪽으로 서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왼쪽으로 서신 분들도 있고 오른쪽으로 서신 분들도 있습니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오른쪽으로 서신 분들은 본인의 오감이,
 왼쪽으로 서신 분들은 몸의 기억이 작용했습니다
이제, 본인이 어떤 감각을 주로 사용하는지를 알아차리셨을 겁니다.
 이번에는 오감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겠습니다. 모두 같이 오른쪽으로 서겠습니다."

그동안 '틀림이 아니라 다른 겁니다'라는 말을 많이 하고 살았지만, 정작 내면은 '다름이 아니라 틀리다'라는 생각을 훨씬 많이 하고 살았다. 나의 마음을 바라보고, 타인의 마음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삶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일화였다.



요가를 시작하고 세 달이 지났다. 처음엔 만져지기만 해도 아프던 오른쪽의 상태가 다리를 들어 '쟁기 자세'를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다. 돌처럼 딱딱했던 어깨도 조금씩 그 굳어짐이 풀어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몸의 변화와 함께, 세상과 잠시 벗어나 수행에 집중하는 요가의 리듬은 마음의 평화에 큰 도움이 되었다. 사람은 심장 박동 수와 같은 파장을 느끼면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사회에서의 삶이 마치 육상 선수들의 운동 중일 때와 같은 심박수라면, 요가의 리듬은 편안하고 느리게 움직이는 심박수의 세계였다. 그리고 그 템포가 진짜 나의 인생의 리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잃어버린 줄 알았던 나의 인생 리듬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어있었던 것일 뿐이었다.


매일 요가를 시작하고 끝날 때,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쌍칼파(Sankalpa, 산스크리스트어로 결심이라는 뜻)'를 외치게 된다. 요가를 처음 배울 때 생각한 쌍칼파는 '나의 몸과 마음은 평안합니다.'였다. 몸과 마음이 힘든 상태를 빨리 탈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련을 계속하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있어 다짐을 바꾸기로 했다. 오늘도, 내일도, 요가를 시작하고 끝내며 되새길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입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입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입니다



몸과 마음이 평화롭지 않더라도 괜찮다

그것이 나 자신의 현재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니까

받아들이면, 평화는 자연스레 따라올 테니까




이전 04화 4. 정신과와 심리상담센터, 뭐가 다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