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초코숲 Sep 06. 2022

2. 정신과, 그 낮고도 높았던 문턱

인생 첫 정신의학과 방문기

자동차 사고 덕분(?)에 2주라는 질병휴가를 받게 되었다. 가족들은 조심스럽게, 정신과 진료를 한 번 받아보는 건 어떠냐는 의견을 주었다. 원래도 생각이 전혀 없진 않았다. 다만 이 정도 증상으로는 정신과에 갈 필요가 없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이다. 주말이 지나자마자, 인터넷으로 근처 정신과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동네마다, 심한 곳은 건물 하나하나마다 정신과 의원이 하나씩 존재하고 있었다. 마음이 아프기 전에는 눈길조차 준 적이 없는데, 주변에 이렇게 힘든 사람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 곳 한 곳 전화를 돌리면서,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어떤 정신과도 '지금은 예약이 다 차서 기다려야 한다'라는 말을 해주었다. 겪어보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정신과 초진 시 각종 검사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 더욱 필요 시간이 많기에 예약이 더욱 어려웠다. 가장 예약이 밀린 곳은 초진의 경우 5달 이후에 가능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다행히 사흘 후 초진이 가능하다는 곳을 발견하여 서둘러 예약했다.


정신의학과는 처음으로 방문하는 곳이어서 그런지 불안한 마음이 컸다. 우습게도 감기로 내과를 가거나, 비염으로 이비인후과에 갈 때는 전혀 하지 않던 걱정이 들었다. 인터넷에 '정신과 초진'을 검색하고 어떻게 진료를 받아야 하는지, 말을 많이 해야 하는지 조금 해야 하는지, 혹시나 이상한 선생님은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여러 가지를 찾아보았다. 


초진일,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병원의 문턱을 넘었다. 카운터 간호사님께서 친절하게 진료 카드 등록을 도와주셨다. 유튜브에 보니 '정신과는 여러 가지 특성 때문에 굉장히 까다롭게 신분 검사를 한다'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체감상 다른 병원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진료를 받기 전에는 전화로 예고받은 대로 몇 가지 심리 검사를 진행하였다. 검사는 객관식 심리검사(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MMPI 같은 검사로 기억한다)와 문장 완성 검사 (주어진 문장을 이어서 완성하는 검사, 예를 들어 '지금 나의 상태는' 문장 뒤에 '좋지 않다. 두렵고 떨린다' 등으로 문장을 완성하는 것) 등을 진행하였다. 


검사를 끝내고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또래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어린 친구들도, 어르신들도 있었다. 특히 아이들과 부모가 같이 온 경우가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은 한 가족은 정말 감당 안 될 정도로 까불거리는 아이와, 말리다 지쳐 우울한 눈빛으로 진료비를 계산하던 어머니였다. 새삼 대한민국이 이렇게 정신이 아픈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분 정도 기다린 후, 진료실로 향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따뜻하게 웃으시며 맞이해주시고 진료를 시작하였다



의사 :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오셨죠?
나 : 안녕하세요. 제가 아무래도 우울증인 것 같아 오게 되었습니다.
의사 : (검사 결과를 본 후) 검사 결과는 별로 좋지 않네요. 요즘에 잠은 잘 자나요?
나 : 12시에 자면 4~5시에 깨는 것 같아요. 그래서 회사에서는 피곤해서 커피를 2잔 이상 마셔요

의사 : 밥은 거르지 않고 드시나요?
나 : 점심은 다른 사람들과 만나기 싫어서, 꼭 만나야 할 약속이 없으면 따로 운동하고 간단히 샐러드
로 먹어요. 사실상 가족끼리 먹는 저녁이 유일한 한 끼 식사네요.
의사 : 그 이외에 다른 증상은 어떤가요?
나 : 회사 가기가 너무 싫어서 금요일부터 월요병이 생기고, 가끔 차에 뛰어들고 싶은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마음속에서 즐거움이라는 감정이 사라진 것만 같아요...


현재 상황에 대한 문답이 계속되었고, 선생님은 상담 내용과 증상을 고려할 때 우울증이 맞는다고 진단하였다. 그리고 추가적인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물건을 잘 잃어버리고 집중하면 가끔 지나치게 몰입하는 습관이 성인 ADHD 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우울증이 완화되면 다시 한번 살펴보기로 했다.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지만, 정신과 진료를 받을 때 가장 환자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잘 먹는 것과 잘 자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 잠도 잘 못 자고, 밥도 잘 못 먹고 있으니 치료가 시급했다. 치료라기보다는 더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 항우울제와 수면유도제를 먹어보고 경과를 관찰하기로 했다. 약은 증상의 변화를 보고 조금씩 조절한다고 한다. 실제로 이후에 증상이 악화되면서 수면유도제의 양을 늘리고, 부작용이 발견되어 항우울제의 종류를 변경하기도 했다.  


정신과는 다른 병원과 달리 병원에서 직접 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에 진료비는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는데, 혹시나 진료 내역이 남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은 비보험으로 약을 처방받는다고 한다. 비록 내역이 남더라도 임의로 공개하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일상에 큰 문제는 없다. 다만, 보험 가입 시 진료기록 제출이 필요하고, 정신과 진료 내역 때문에 보험 가입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고 한다.




정신과를 첫 방문한 소감은 '진작 왔으면 더 좋을 뻔했다'였다. 마음속의 우울이 커질 때마다, 치료에 드는 시간과 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고 한다. 나의 경우에도 이미 상담치료로는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어씩에 약물치료를 곧바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해나, 그 이상의 잘못된 생각을 가질 정도로까지 악화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다행인 점은 가족들이 정신과 방문을 권하고 지지해준다는 점이다. 우울증과 관련된 많은 사례를 찾아보니, 정신과에 가고 싶어도 가족의 극심한 반대로 방문이 어려운 안타까운 경우가 제법 있었다.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며칠이 지났다. 실제로 약물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2주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속에 큰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새 교통사고로 받은 병가 기간이 끝났다. 이제 다음 주면 다시 회사로 출근을 해야 했다. 출근 생각을 하니, 갑자기 전에 없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슴이 쿡쿡 찌르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이전 01화 1. 갑자기, 회사가 두려워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