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초코숲 Oct 07. 2022

이 길 끝에 막시무스의 집이 있다

걷다가 힘들면, 이리로 와서 쉬어요


2019년 9월, 여전히 내리쬐는 뜨거운 지중해의 햇살을 받으며 토스카나를 둘러보는 투어버스에 올랐다. 로마를 떠나 한 시간쯤 되었을까? 연녹색의 언덕들 사이에 사이프러스가 줄지어 서 있는 길에서 내리게 되었다. 

가이드는 이곳을 '막시무스의 집'이라고 소개했다. 영화 <글래디에디터>에서 주인공 막시무스가 살던 집의 풍경과 '비슷'하다는 말과 함께. 비슷하다는 말이 가지는 포인트는 여기가 진짜 촬영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뭐, 너무 오래전에 본 영화이기도 했고, 진짜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말 덕분에 별로 개의치 않았지만.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시야 끝까지 쭉 펼쳐진 길의 모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기도 했다. 길을 바라보고 있자면, 하루하루 인생을 걸어가고 있는 스스로를 그 위에 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인화해두었던 '가짜 막시무스의 집'으로 가는 길, 사무실의 삭막한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모니터 옆에 붙여놨다가, 지금은 우리 집 냉장고 앞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어느 날, 무심하게 냉장고를 열다가 문득 사진에 계속해서 시선이 갔다. 평소에는 사진의 '길'과 '사이프러스'에 집중했는데, 그날만큼은 길 끝에 있는 '집'이 더 눈에 띄었다. 영화 마지막 즈음, 죽어가는 막시무스는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이 반기는 집으로, 사이프러스가 이어진 돌길을 따라 걸어가는 환상을 본다. 집은 비극적인 운명을 가진 한 검투사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삶의 마지막까지 추구했던 목표였다. 


사진을 계속 바라보며, 나의 삶에서는 막시무스의 집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안타깝지만 집 대신 길이 계속 이어진 모습만을 떠올리게 된다. 얼마 전, 그림 심리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비 오는 날의 풍경을 그려달라는 말을 듣고 그렸던 그림도, 정처 없이 길을 걷는 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때 상담사 선생님이 해주신 말이 뇌리를 스쳐간다. "가끔은 쉬었다 갈 수도, 그리고 왔던 길을 돌아갈 수도 있어요." 


앞만 보고 달려가다 잊어버린 나의 '막시무스의 집'은 무엇일까. 오늘도 토스카나의 언덕에 덩그러니 남아있을 집이 속삭이는 것만 같다. '걷다가 힘들면, 이리로 와서 쉬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토론회에서 배운 5가지 깨달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