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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Sep 06. 2021

누구의 무엇으로서가 아닌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하세요.

2021년 9월 6일 아내 생일 편지

사랑하는 상인씨 생일 축하합니다.


유난히 길었던 올여름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9월은 선선해진 바람만큼 여유롭습니다. 오늘부터는 큰 아이도 등교를 한다고 하니, 마치 생일 선물처럼 코로나로 얽혀 버린 실타래도 하나씩 그렇게 풀려 가나 봅니다.


살다 보면 그렇게 실타래처럼 얽힌 일들이 참 많습니다. 내가 애쓴다고 원하는 것들이 다 이루어 질리 없고, 내가 맘 주는 만큼 내게 신경 써 주는 사람도 흔치 않습니다. 계획한 일도 제대로 하기 버거운데 갑작스러운 일들이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오곤 하죠. 그러니 다 잘해 주고 싶고 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많으면 그만큼 무겁고 아쉬운 마음이 클 겁니다.


올여름에 우리는 수인이가 대안학교를 떨어지고 난 후에 스스로 너무 공부가 뒤쳐지는 것 같다며 걱정하고 불안해할 때 부모로서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정해야 했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르게 커 왔고 다르게 공부한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지만 불안해하는 아이를 앞에 두고 같이 답을 찾아야만 했었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내가 익숙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가 불안한 부분이 어디이고 그걸 도와 줄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사춘기에 접어들며 머리는 커졌지만 아직은 어려서 감정 처리에 미숙한, 그래서 스스로 열심히 해보려는 의지와 공부할 양이 늘어 부담스러운 마음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아이가 행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조금은 전과는 다른 태도와 마음으로 가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번 여름 동안 우리는 새롭게 스스로의 길에 접어들게 된 큰 딸을 통해서, 부부는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각자 감정을 처리하고 행복을 느끼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수인이에게 바랬던 것처럼 "인생에 정해진 답은 없고 노력한다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고픈 걸 하면서 행복해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을 되새기게 됩니다.


그러니 당신도 하고 싶은 걸 하세요. 어머님 아버님의 사랑스러운 딸이자, 우리 부모님의 착한 며느리고 우리 두 딸의 엄마로서의 이상인이 아니라 그냥 이상인이라는 사람이 하고 싶은 걸 하고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 모습을 보고, 부모님들은 흐뭇해할 것이고, 우리 딸들은 자신들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생각하며 커 갈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또 거기에 맞춰 즐겁게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알고 지낸 시간이 벌써 23년이 넘었고, 함께 살기 시작한 지도 15년이 다 되어 가지만 우린 서로 다른 사람입니다. 가끔은 그 다름 때문에 서운하고 불편한 적도 있지만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저는 오히려 더 좋습니다. 잘 못하는 것은 서로 채우고, 부족한 것은 상대에게서 배우고, 또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되니까요. 삶은 초콜릿 상자 같아서 무슨 일이 일어 날지 모르지만 그래도 당신답게 해 나갈 겁니다. 더위만큼 힘들었던 여름을 보내고 맞이한 올해 생일은 그래서 더 반갑습니다.


생일 축하해요. 태어나 줘서 고맙습니다.

같이 또 가 봅시다.


2021년 9월 6일에

사랑하는 남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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