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은 곳을 가도 삶의 중심은 일상이다.
우리는 여행을 좋아했다. 부산이 고향이라 명절마다 내려가야 하면 휴가를 붙여 올라오는 길에 어딘가를 들렀다 오곤 했다. 남들보다 길게 쉴 수 있는 외국계 회사의 장점을 누렸고 그렇게 추억도 쌓아왔다.
그러나 여행은 늘 피곤했다. 이동은 길고 길은 막혔다. 네 식구가 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 지내면 홀로 편히 쉴 틈이 없었다. 멀리까지 왔으니 볼거리 먹을거리 찾아 계속 다니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었다. 그런 강행군을 하고 돌아와서 채 회복도 되기 전에 일상은 다시 시작됐다.
더군다나 미리 예약해 두어서 날짜도 못 바꾸는 여행은 컨디션이 안 좋을 땐 짐이다. 아내는 몸이 좋지 않아도 다 같이 가는 여행이라 따라나섰고 꾹 참고 같이 다녔지만 힘들었고 갔다 와서는 더 쳐졌다.
작년에도 할머니 돌아가셔서 경남 거창에 초상 치르고 나서 그랬고, 여름에 고성을 일주일 다녀와서도 그랬다. 늦가을에 캠핑하러 갔다가 추워서 감기 들고 나서 그랬고, 올해도 휴직해서 신난 마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갔다 온 여행 이후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늘 바쁜 틈에 답답해서 미리 잡은 여행을 갔다가 피곤한 상황에서 돌아와서 또 해야 하는 일들이 무거워 부담스러워지는 패턴이 있음을 같이 쉬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친 일상을 Refresh 하자고 가는 여행인데 갔다 와서 괴로우면 아니 간만 못하다. 그래서 앞으로는 먼 여행은 자제하고 일정도 미리 잡지 말고 마음 내키면 떠나기로 했다. 이번 선거 현충일에 큰 아이 재량 휴교일이라 생긴 연휴에도 두 달 전에 미리 잡았던 속리산 숙소 예약도 취소했다.
대신 일상을 여행처럼 비우고 살기로 했다. 다행히 집 앞 호수 둘레길이 어느 여행지 못지않다. 자연이 곁에 있어 집과 동네에 머무는 시간이 답답하지는 않다. 길에서 버리고 좁은 공간에 치이는 대신에 더 걷고, 잘해 먹고, 더 잘 쉬기로 했다.
언젠가 건강이 다 회복되고 나면 다시 떠나고 싶어 지겠지만 지금은 더 단순하게 살아야 할 시간이다. 아무리 좋은 곳을 가도 삶의 중심은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