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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Jun 01. 2022

일상을 지치게 하는 여행을 줄이기로 했다.

아무리 좋은 곳을 가도 삶의 중심은 일상이다.

우리는 여행을 좋아했다. 부산이 고향이라 명절마다 내려가야 하면 휴가를 붙여 올라오는 길에 어딘가를 들렀다 오곤 했다. 남들보다 길게 쉴 수 있는 외국계 회사의 장점을 누렸고 그렇게 추억도 쌓아왔다.


그러나 여행은 늘 피곤했다. 이동은 길고 길은 막혔다. 네 식구가 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 지내면 홀로 편히 쉴 틈이 없었다. 멀리까지 왔으니 볼거리 먹을거리 찾아 계속 다니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었다. 그런 강행군을 하고 돌아와서 채 회복도 되기 전에 일상은 다시 시작됐다.


더군다나 미리 예약해 두어서 날짜도 못 바꾸는 여행은 컨디션이 안 좋을 땐 짐이다. 아내는 몸이 좋지 않아도 다 같이 가는 여행이라 따라나섰고 꾹 참고 같이 다녔지만 힘들었고 갔다 와서는 더 쳐졌다.


작년에도 할머니 돌아가셔서 경남 거창에 초상 치르고 나서 그랬고, 여름에 고성을 일주일 다녀와서도 그랬다. 늦가을에 캠핑하러 갔다가 추워서 감기 들고 나서 그랬고, 올해도 휴직해서 신난 마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갔다 온 여행 이후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늘 바쁜 틈에 답답해서 미리 잡은 여행을 갔다가 피곤한 상황에서 돌아와서 또 해야 하는 일들이 무거워 부담스러워지는 패턴이 있음을 같이 쉬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친 일상을 Refresh 하자고 가는 여행인데 갔다 와서 괴로우면 아니 간만 못하다. 그래서 앞으로는 먼 여행은 자제하고 일정도 미리 잡지 말고 마음 내키면 떠나기로 했다. 이번 선거 현충일에 큰 아이 재량 휴교일이라 생긴 연휴에도 두 달 전에 미리 잡았던 속리산 숙소 예약도 취소했다.

집앞 호수길. 큰 위로가 된다.

대신 일상을 여행처럼 비우고 살기로 했다. 다행히 집 앞 호수 둘레길이 어느 여행지 못지않다. 자연이 곁에 있어 집과 동네에 머무는 시간이 답답하지는 않다. 길에서 버리고 좁은 공간에 치이는 대신에 더 걷고, 잘해 먹고, 더 잘 쉬기로 했다.


언젠가 건강이 다 회복되고 나면 다시 떠나고 싶어 지겠지만 지금은 더 단순하게 살아야 할 시간이다. 아무리 좋은 곳을 가도 삶의 중심은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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