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공지가 붙었다. 아파트 헬스장 청소 주 3회 1회당 3만 원 모집 중. 새벽잠이 없어져서 일찍 깨는 요즘 용돈이라도 벌어 볼까 싶어서 산책 나가는 길에 아내에게 한 번 해볼까 했더니 난데없이 같이 나선 초등학교 3학년 둘째가 절대 안 된다고 한다. "왜 안돼?" 하고 물어보니 그냥 싫다며 울먹울먹 거린다.
평소 같으면 신경도 쓰지 않을 광고인데 눈이 갔던 건 아마도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라는 책 때문일 거다. 꼰대에 남들 따라 명품 쓰고 일만 알지 재테크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김 부장님은 명예퇴직하고 사기당하고 공황 장애가 왔다가 큰형이 하는 카센터에서 세차일 하면서 정신 차린 다는 이야기였다.
휴직을 하긴 했지만, 그동안 모아 놓은 돈과 육아 휴직 지원금으로 충분히 잘 지내고 있다. 잘 따져 보고 큰 경제적인 부담 없이 결정한 휴직이지만 매달 들어오던 달달한 월급이 끊기는 불안감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처음 계획한 대로 생활을 단순하게 보내고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면서 지출을 줄여서 살아가고 있지만, 돈이란 놈은 있어도 늘 부족하다.
그리고 가장으로서 나의 존재감도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야 더 높아질 거 같다. 그래서 김 부장은 세차도 하는데 나는 동네에서 운동 삼아하는 건 어떨까 싶어 슬쩍 꺼낸 이야기에 딸은 질겁을 하고, 아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본다. "여보 우리 경제 상황이 혹시 많이 안 좋은 거야?"
아차 싶었다. 애초에 돈이나 번듯한 직장이 중요했으면 휴직을 시작하지 않았을 거다. 임원이 되고 성공한 직장인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서 함께 한 결정인데 나의 제안은 '돈'이 제일 필요한 것 아니냐는 신호로 해석되고 가족들은 불안해했다.
덜 불안하자고 시작한 휴직이 더 불안하게 만들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아니야. 여보. 걱정할 거 없어. 내가 괜한 이야길 했네. 우리 지금처럼 단순하고 간결한 삶 살아 가는데 집중합시다."
가장이니 가계에 조금이라도 내손으로 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도 벗고, 사고 싶은 거 참아야 할 때 답답한 마음도 벗자. 지금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건 돈 더 벌어주는 가장보다 불필요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더 많이 같이 시간을 보내 주는 남편과 아빠란 걸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