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원 Jul 01. 2022

평화롭고 단순하고 간결한 삶

반년의 휴직덕에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조금 찾은 듯 하다.

휴직을 한지 절반이 지났다.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간다. 19년을 달리던 길을 잠시 멈추고 어떻게 살아 갈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 가족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은 정말 끊임이 없다. 그래도 나눠하면 할 만하다. 그리고 밥 해 먹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하는 일들이 다행히 적성에 맞았다. 누가 뭘 해야 하는 것이 정해진 것 없이 설거지가 쌓여 있으면 하고, 청소는 밤 9시에 "모두 제자리" 노래를 틀고 온 가족이 같이 했다.  


관계는 조금 줄였다. 갈 때는 좋지만 다녀오면 힘들고 부담스러운 여행도 줄이고, 약속도 좀 덜 잡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답답하다 여길 수 있지만 직장을 다니지 않는 지금은 집이 나의 직장이고 터전이다. 아내와 아이들, 우리들의 생활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들도 아내도 나를 필요로 했고, 나도 온전히 가족과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 혼자였던 시간이 둘로, 셋이었던 시간이 넷이 되면서 집은 더 많은 우리 간의 관계로 채워졌다.



중학교 들어간 아이의 공부는 직접 챙기기로 했다. 학원비를 아끼는 효과도 있지만 획일화되고 너무 빨리 달리는 사교육 시장의 속도보다 우리 속도대로 가고 싶었다. 샘이 많은 아이는 진도를 빼는 대신에 수학 응용/심화 단계를 천천히 같이 가고 있다. 그리고 다른 과목들의 진도도 1주일에 한 번씩 함께 리뷰하고 조정해 가고 있다.


집에만 머물러 있다고 움츠려 있지 않았다. 우리는 더 행복해 지기 위해 더 건강하기로 했다. 잘 먹고 살도 빼고 운동도 같이 했다. 각자 좋아하는 요가나 골프 같은 운동을 꾸준히 하고 함께 많이 걸었다. 6월부터는 Run day 달리기도 시작했다. 30분을 걷고 달리면서 앞으로도 평생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휴직은 했지만 그렇다고 놀지는 않았다. 글 읽고 배우고 쓰기를 좋아하는 우리는 매일 조금씩 각자의 일을 함께 해 보기로 했다. 동네 카페에 익숙한 책상에 자리를 잡고 나는 자동차와 경제와 사람에 대한 글을 쓰고, 아내는 음악에 대한 글을 쓴다. 동네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도 만들어 보고 글을 엮어서 책도 써 보기로 했다. 일을 하려고 사는 건 아니지만 일을 하면서 사람은 살아가는 이유를 만들기도 한다.



매주 월요일에는 일하기 전에 주간 회의를 한다. 이번 주는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각자 계획했던 공부와 글쓰기는 잘 되고 있는지. 부모님, 아이들 관련해서 해야 하는 결정들을 함께 정하고 매일 하는 일상에서 시간표도 조정하고 일주일 식단도 같이 짠다. 각자 가고 싶은 외부 약속이 있으면 미리 이야기하고 되도록 1주일에 하루를 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일정한 루틴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산책 가고, 아침 먹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함께 달리고 10시까지 동네 카페에 나와서 1시까지 글 쓰고 공부하고, 점심 먹고, 휴식하거나 각자 운동하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 만나서 간식 주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 이야기하고, 저녁 식사 준비하고 같이 밥 먹고, 산책하고, 과외하고, 운동하고, 청소하고 함께 수다 떨다 자는 하루가 반복하고 있다. 잠자리에 들면 하루를 잘 보냈다는 느낌이 든다.


지난 반년의 조정 덕에 남은 반 생애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조금 찾은 듯하다. 남은 휴직 기간 동안에도 우리는 이렇게 평화롭고 단순하고 간결한 삶을 살아갈 거다.  다시 복직하더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도록 일상이 습관이 되어 관성이 생기도록 잘 챙겨 볼 거다. 이 길을 차분히 가다 보면 우리 가족 모두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친한 형이 떠난 장례식장에서 문득 외로워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