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바이든을 그렇게 원했던가.
고백하건대 어제는 하루 종일 미 대선 레이스에 신경이 쓰여서 일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지난번 힐러리와 트럼프 때는 그저 남의 집 불구경하듯 그냥 지나갔었는데 올해는 지난 4년간 트럼프의 행보에 많이 지쳤나 봅니다. 바이든이 된다고 제게 떡고물 하나 떨어질 일 없는데 왜 그렇게 마음이 가는지… 밤에 자다가도 CNN 찾아보고 Google에 업데이트된 지표 보면서 남은 표의 지지율 대비 당선 가능성도 혼자서 엑셀 파일 만들어서 계산해 보고 했었습니다.
밤새 엎치락 뒤치락하는 레이스를 보면서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지만 정말 미국은 둘로 갈라져 있구나라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저렇게 주마다 성향도 다르고 지지하는 정당도 다르면서 어떻게 한 나라를 이루고 살 수 있을까 싶더군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렇게 양분된 나라를 하나로 묶는 일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드는 질문은 “나는 왜 이렇게 바이든에게 집착하는가”라는 점입니다. 대선 레이스가 중계되면서 한국 여러 게시판에서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글이 넘쳐 났습니다. 혹자는 극우와 극좌(친문재인) 세력 모두에게 응원받는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뿐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대북 정책에서나 대 중국 경제 전쟁에서나 한국에게는 더 유리한 기회가 많을 거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선거 진행 과정을 보니까 한국에 더 도움이 된다는 데도 트럼프가 싫은 이유를 더 확실히 알게 되더군요. 트럼프는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업가임을 선거에서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본인이 불리한 우편 투표는 무효라고 주장하고, 질 것 같은 주의 개표는 소송으로 막으려 하고 이 모든 소송들을 본인이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연방 대법원 신임 구성원도 본인 편으로 미리 앉혀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패배를 목전에 두자 불법적인 요소가 많았다며 불복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아마도 트럼프는 “위대하다”는 말의 뜻을 저와는 다르게 이해하고 있나 봅니다. MAKE AMERICA GREAT AGAIN –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슬로건으로 4년 전 당선된 트럼프는 기존의 협약도 깨고 말도 바꾸면서 “미국만을 위한” 행보를 이어 왔습니다. 그에게 위대한 나라는 아마도 더 부유한 나라. 더 강한 나라, 더 남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 있는 나라를 의미하는지 모릅니다. 이 지상 과제 앞에서 신뢰, 미래, 희생, 연대라는 가치는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그 사이에 지구의 기후 온난화는 더욱 심해졌고, 중국, 러시아 등 지역 주의는 더 강해졌으며, 자본이 가치를 지배하는 신자본주의는 우리 삶에 가까이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가 세상을 뒤덮었죠. 제대로 된 의료 보험 체제가 정비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질병에 의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 심각해졌고 다시 코로나 이전으로 언제 즈음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무언가를 “위대하다”라고 칭하려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제 시대에 전범들도 그들의 나라의 입장으로 봤을 때는 자기 나라 이익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베 총리의 신차 참배를 비난하는 이유는 그들이 추구한 가치가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도널드 트럼프가 싫습니다. 그리고 이 선거 과정에서 그의 편협한 목표 지상주의가 여실히 드러나서 미국의 많은 공화당 지지자들도 그들이 원하던 진정한 보수의 가치는 트럼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쓰고 보니 남의 나라 일이 아니네요. 집값, 세금, 입시, 학원, 경쟁.. 우리 안의 트럼프를 돌아보게 되며 그 반대급부로 파란색의 승리를 그렇게 기원했나 봅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승부와 남은 이야기들을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히 기다려야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