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의 민주주의가 먼저입니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무언가가 남에게는 억압일 수 있습니다.

by 이정원

추석 아침에 일입니다. 추석이면 늘 고향인 부산에 들러 온 가족이 함께 모였었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한 주 일찍 미리 찾아 뵙고 왔습니다. 어제 아내와 산책하는데 예쁘게 뜬 보름달을 보면서 아내가 이야기 합니다. “이렇게 한가롭게 보내는 추석은 처음이네.” 돌이켜 보니 결혼하고 매번 명절이 되면 출장이나 출산 같은 이유가 없을 땐 저희는 무조건 고향에 내려 가 봐야 했었습니다. 아내에게 참 고마운 일이지만 매번 그렇게 내려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제사 준비도 없고 친척들 손님 접대 부담도 없는 어머니는 참 편안해 보였습니다. 아들이 사주는 샐러드도 맛있게 드시고, 이기대 험한 등산길도 씩씩하게 잘 가시더군요. 사실 올 초에 설날 준비하시면서 올해부터는 추석엔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용기 내어 선언하셨는데 여름 즈음에 전화 드리면 “그래도 해야 하지 않겠냐”하시며 많이 눈치를 보시곤 하셨습니다. 그토록 원하시던 제사 해방을 이루셨으니 코로나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봅니다.


명절이면 고향에 내려 가고, 모여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전통이지만, 그걸 유지하기 위해 고생하고 힘든 사람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이렇게 간단히 안 해도 되는 일이었는데 그렇게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왜 일까요? 어쩌면 우리가 늘 당연하다고 여기는 많은 것들이 실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고 우리가 안 할 수 도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누리 교수님은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민주주의를 이루려면 우리가 민주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형태로부터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광장에서 대통령은 물러가라고 외치고 그래서 탄핵까지 이루어 냈습니다. 그런 큰 민주주의는 이루어 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어떤 까요? 우리는 민주적입니까? 누군가에게 자식이라면 후배라면 부하라면 여자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하면서 억압을 주고 있지 않나요? 혹은 그래도 사장님 지시인데, 늘 그렇게 하던 거니까, 남들 눈이 신경 쓰여서 불편하고 불행한 일을 계속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명절에 제사를 지내고 식사까지 하고 나면 엄청난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그 설거지는 제 몫입니다. 처음에는 뭐하는 거냐고 와서 음복이나 하라고 소리치시던 숙부님들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십니다. 장손인 제가 하고 있으니 눈치 보는 제 동생도 슬쩍 옆에 와서 거듭니다. 사촌동생들도 다들 그릇이라도 가져 오고 남은 음식 담고 힘을 모아서 함께 뒷정리를 합니다. 그렇게 처음엔 어색하고 눈치 보이는 일이었지만, 해서 좋은 일은 하면 되더군요.


세상이 왜 이렇게 불평등하고 부조리한지 탓하기 전에 제 일상을 돌아 봅니다. 남편으로서 부모로서 상사로서 선배로서 나도 모르게 나만 옳다고 하는 것들을 남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국가의 주인이 나라고 외치기 이전에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고 떳떳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들도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게 해 주는 일상에서의 민주주의가 먼저입니다. 모두가 행복한 명절이 앞으로도 계속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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