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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Sep 30. 2022

나는 내가 I 라서 좋다.

우리집은 두명의 I와 두명의 E로 이루어져 있다. 맏이 출신인 나와 큰 딸은 I, 막내 출신인 아내와 둘째는 E 성향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가 부담스러운 나와는 달리, 우리 둘째는 아주 동네를 휘젖고 다닌다.


오늘도 학교 마치고 이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집에 와서 밥 먹고는 불금이라며 저 친구와 동네 놀이터에서 놀기로 했다고 나가겠다고 안달이다. 너무 늦은 시간에 나서는 것이 걱정된 나는 그럼 아빠가 같이 나가겠다고 하고 아이들이 노는 옆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우리 둘째를 포함해서 E들은 기본적으로 남들이 자기를 나쁘게 생각할 거라고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그런다고 해도 상관없다. 나는 내가 좋고 하고 픈 일도 많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 만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한다. 코로나로 격리 중인 아내는 가고 싶은 여행지를 꼽아 보며 무료함를 달래고, 달력에는 가보고 싶은 음악회로 가득하다.


반면에 I들은 늘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신경을 쓴다. 행동이 조심스럽고 다른 사람의 기분까지 챙기느라 정작 스스로는 챙기지 못할 때도 있다.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는 큰 아이는 집에 다른 사람이 오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긴장이 풀리고 나면 사이좋게 잘 지내지만 아이스 브레이킹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 하나 챙기기도 힘든데 남들도 신경쓰다 보니 I 형은 늘 좀 피곤하다.


어떤 사람이 I가 되고 또 어떻게 E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춘기가 오기 전에 큰 애는 딱 지금 둘째처럼 신이 나서 학교 가고 친구들 만나러 다니던 외향적인 아이였고, 중국에 처음 갔을 때만 해도 둘째는 새로운 환경이 낯설어 엄마 뒤에 숨고 영어가 서툴러 하루종일 말 한마디 안 하던 내성적인 아이였다. 자신감, 주변 환경, 친구 관계, 가족 내에서 역할, 해야 하는 일의 무게와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두려움. 유전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한 사람이 어떤 성향을 가지는지는 계속 변하는 것 같다.


나는... 동아리에서 단장도 하고, 회사에서 팀장도 하고, 프로젝트도 리딩해 봤지만 그건 역할이 그런 것이었고 성향 자체는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같이 있는 사람들이 늘 마음에 쓰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같이 필요한 일에 더 신경이 쓰인다. 엠티가면 어느 틈에 안주 만들면서 요리하고 있고, 모임을 하면 총무 맡기 일쑤다. 휴직 기간에도 집에서 가족들을 돌보는 일이 더 편안하다.


젊을 때는 다른 사람들을 챙기는 것이 좀 과했다. 그래서 나도 피곤했고 남들도 힘들게 했다. 그 때를 돌아 보면 내가 사람을 고파했던 건 외로움이 제일 컸던 것 같다. 외로운 서울 살이가 주었던 공허감은 결혼을 하고 내 가족이 생기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많이 채워졌다. 이렇게 광교에서 가족들과만 지내다 보면 가끔 시끌벅적한 술자리가 그립지만 예전처럼 많이 고프진 않다.


공허함은 채워 졌지만 남을 챙기는 습은 아직 몸에 남아 있다. 그러다 보니 시키지 않아도 집안 일도 사서 한다. 첫째가 밥 챙겨 주던 호수공원의 길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요즘은 바쁜 딸 대신 내가 챙겨 주고 있다. 오늘 오후에 밥 주러 갔더니 이제는 익숙해 졌는지 멀리 도망도 가지 않고 곁에 와 앉았다.

가끔은 둘째를 보면서 나도 E로 태어 났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한다. 집안일을 몰아서 한참을 하고 나면 현타가 오면서 나만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나란 사람이 살아 가는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스스로 찾아 가게 됐다. 남들이 인정해 주면 좋지만 안 해 준다고 해서 아쉬울 필요는 없다.


큰 아이가 가끔 자기는 너무 내성적인 것 같다고 슬퍼하면 안스럽고 도와 주고 싶지만 곁에서 안아 줄 수 밖에 없다. 내성적인 사람들은 소심하고 눈치보고 늘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섬세하고 다정하고 역지사지로 배려할 줄 안다. 그렇게 양보하고 배려해 주는 I가 있어서 반짝반짝하는 E가 빛나는 걸... 그래서 세상에 I도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아는데는 시간이 좀 필요하니까... 우리 딸이 아빠보다는 일찍 스스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인 걸 좋아하게 될 때까지 딸도 챙기고 그녀가 좋아하는 고양이도 챙기면서 함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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