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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Feb 23. 2023

육아 휴직 1년. 회사로 돌아온 이야기

돌아온 자리는 익숙하지만 낯설고 함께 하지만 외롭다.

회사에 복직한 지 한 달 반이 지났다. 돌아왔지만 바로 매일 출근하는 건 아니었다. 휴직하는 동안에 소진하지 못한 2022년 연월차를 2월까지는 다 소진해야 한다는 인사팀 권고에 따라 일주일에 이틀씩 쉴 수 있었다. 변화의 시기에 연착륙이 필요한 우리로서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틀을 쉬었어도, 돌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이들 방학과 겹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온전히 다시 혼자 하게 된 아내에게는 도움이 필요했다.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도우미분들을 섭외하고 면접 보고 하는 과정이 2~3주간 계속됐다.


약속했다가 취소하는 사람. 와서는 자기 너무 힘들다고 약속했던 돈 보다 더 달라는 사람. 와 보니 너무 멀어서 못 하겠다는 사람. 마음이 맞고 믿을 수 있는 분을 만나는 건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도 지금 와 주신 분을 만나서 인연을 이어갈 수 있어 좋았다.  


아이들에게도 아빠의 복직은 빈자리가 컸나 보다. 동네 골목 대장인 둘째는 여전히 씩씩하지만, 중2에 올라가는 큰 아이는 사춘기가 심하게 찾아왔다. 12월 말에 좀 지쳐 보이더니 1월 중순부터 자주 우울해하고 밖으로 나가기를 싫다며 힘들어했다. 울음소리가 자주 들리고, 방에 들어가면 잘 나오지 않았다.


아이가 힘들어하면 부모도 힘이 든다. 내 탓 같고 안쓰럽다. 사춘기라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없다. 그저 곁에 있어 주며 도와 달라고 그러면 도와주고 함께 있어 달라면 같이 있어 주는 수밖에... 그래도 좋아하는 운동도 하러 나가고, 밤엔 아빠와 대화도 하고 이번 주부터는 상담도 같이 다니기로 했다. 아이에게 힘들 때 힘들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라도 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회사는 변했다. 새롭게 조직의 장이 된 담당님과 팀장님들이 반겨주는 회식도 했지만, 속마음은 알 수가 없다. 작년에 쉬는 동안 많은 동료들이 회사를 떠났고 아마도 나도 다시 돌아오기보다는 다른 회사로 이직할 거라는 생각을 더 했을 수도 있다. 경기가 좋지 않아 조직이 축소되면서 팀은 점점 줄어드는데 돌아온 팀장급 선임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자리만 봐도 그랬다. 돌아가면 어디 앉을까요? 하는 질문에 핑퐁처럼 이런저런 의견이 오고 가더니, 어느 팀에도 속해 있지 않은 공간이 답으로 돌아왔다. 모두에게서 거리가 있는 널찍하지만 외로운 자리. 덕분에 고개를 돌리면 하늘이 많이 보이고, 주변에 사람도 없어서 1월에 책 작업도 틈틈이 잘 마무리했다.


나는... 잘 버티고 있다. 해야 할 일이 없어서 자유로웠던 시간에서 해야 할 일이 계속 있는 위치로 돌아왔다. 마음을 주었던 동료들이 많이 떠난 직장은 익숙하지만 낯설고 함께 하지만 외롭다.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적당한 선을 지키면서 그들이 요청하는 일들을 나답게 하고 있다. 혼자 있어도 굴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살아가는 훈련은 휴직 기간 내내 해 왔으니까... 다행히 바쁜 현업 대신에 선행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맡겨 줘서 자연스럽게 자율적으로 일 할 수 있게 되었다.


점심시간이면 회사 주변을 산책하는 분들과 한 바퀴 걷고 조금 더 남는 시간에는 꾸준히 스트레칭실에 가서 근력 운동을 하고 있다. 날이 더 따뜻해지면 농구장에 가서 공도 던져 보려고 한다. 코로나 이후 썰렁했던 운동장에 팀장급 정도 되는 사람이 처음 나서면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신경도 쓰이지만, 휴직을 처음 결정할 때도 그랬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니까 내게 필요한 결정은 나를 위해 해야 한다.


그렇게 나는 다시 회사를 나가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예전처럼 여유 있게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책 읽던 여유는 없어졌지만 그 또한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머릿속에 늘 남아 있는 해야 하는 일은 없어지지 않겠지만 어서 익숙해 지기를. 그러면 그 일들 사이의 자투리 시간들을 조금 더 여유 있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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