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 GPT 시대에 도구로서의 AI에 대한 고찰
CHAT GPT가 세상에 나온 지 아직 채 일 년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세상은 많이 변했다. 단순한 학습을 넘어서 딥 러닝 모델을 사용하여 사용자 입력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생성하는 Generative 인공지능의 등장은 인간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콘텐츠 창조의 영역이 위협받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각종 보고서, 프레젠테이션, 회화, 음악, 각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만든 콘텐츠들이 넘쳐 나고 있다.
교육 현장도 난리가 났다. 한 달을 열심히 짜야하는 프로그래밍이 5초 만에 완성되고, 열심히 고생해서 작성한 에세이보다 더 유려하고 좋은 영어의 에세이가 단번에 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은 학생들에게 어떻게 숙제를 내고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당연히 따라온다.
합창단 후배이자 Generative AI의 전문가인 KAIST 전산학과 김주호 교수의 매세월 강연은 AI 시대의 새로운 미션에 대한 꽤 명쾌한 답을 보여 준다. 사이트를 막고, CHAT GPT를 사용해서 제출한 숙제는 막겠다는 일반적인 대응에서 벗어나 카이스트는 오히려 새로운 도구의 사용을 권장하고 어떻게 사용하면 더 좋은 성과로 이끌지에 더 평가의 초점을 맞추었다.
여러 학기에 걸친 실험은 확실히 GPT는 평균 이상의 성과물을 빠르게 제공해 주면서 교육 참가자들의 결과물의 상향 평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이라도 GPT의 도움으로 필요한 영어 작문이 가능한 것이 그렇다. 말로 요구해도 알아서 하는 도구는 그래서 더 편리하다.
그러나, 조금 익숙해지고 나면 상급자들에게는 오히려 몰입도가 떨어졌다. 프로그래밍만 해도 틀도 잡아주고 코딩도 대신해 주는 것이 처음에는 편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어도 말로 해야 하는 것이 불편한 시점이 온다. 차라리 스스로 참여해서 직접 고쳐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김주호 교수는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단순히 답을 주고받아들이는 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을 함께 서로 가르쳐 가면서 쌓아가는 AI 모델을 제안했다. AI가 다하고 못하는 영역을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효능감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조금은 어리숙한 초보처럼 학생에게 다가가서 적절한 질문들을 통해 학생이 오히려 AI를 가르쳐 가면서 성장하게 하는 알고보라는 모델도 소개했다.
https://youtu.be/jZPp8vWHU0g?si=oHqAbkHjXzjn2mPg
강연을 듣는 내내, 김주호 교수와 카이스트가 Generative AI를 대하는 태도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적응도 중요하겠지만 결국은 그 모든 것이 사람을 위한 방향이어야 한다는 목표가 명확했다. 특히 학생들의 입장에서 어떤 소양을 늘려 주어야 새로운 시대에 더 잘 적응하고 능동적이고 건설적 방향으로 상호 교류를 통해 성장을 이어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한 흔적이 모델 곳곳에 느껴졌다.
그리고 강연 말미에 나온 것처럼 사람마다, 분야마다 AI에 대한 입장이 다른 점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초보자인 척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간의 질문과 Interaction 중에 학생이 자기 주도적으로 더 하고 싶은 영역과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파악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교육 플랜을 AI가 능동적으로 짜주면 그만한 숙련된 조교가 없을 듯하다.
손으로 글자를 잘 쓰는 능력은 타자기와 컴퓨터의 발달로 더 이상 글을 쓰는데 꼭 필요한 능력이 아니게 되었다. (예전 사법고시 준비생들은 펜글씨도 연습했다.) 마찬가지로 결국 중요한 건 Generative AI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비교하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새로운 도구에게 어떤 일을 넘기고, 우리는 어떤 새로운 능력을 키워야 하는가이다. 나는 그 답을 제임스 영이 주장한 아이디어의 5단계에서 찾고 싶다. 자료를 모으고 그걸 소화하고 그러고 잠시 거기서 떠났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그 과정에는 우리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사피엔스라는 책의 내용을 GPT가 정리해 주었다고 해서 내가 사피엔스를 읽은 것과 동일한 건 아닐 것이다. 사피엔스의 줄거리를 묻는 질문에 답이 될 순 있겠지만, 책을 읽고 파생되는 수많은 나만의 상상의 나래들은 AI가 흉내 낼 수는 없다. 그 상상에는 마치 온리인 상에 있는 수많은 데이터에서 AI가 추려서 콘텐츠를 만들어 내듯이 뇌도 내가 본 글들, 경험들, 고민한 모든 흔적들이 녹아 있다.
이 인간만의 고유하고 개개인마다 유니크한 창조의 순간은 그러나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소화하고 내적으로 숙성하는 시간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현존하는 자료를 수집하고 나름 소화해서 정리해 주는데 탁월하다. 새로운 인공지능 시대에 적응 여부는 결국 자료를 수집하고 소화하고 연결을 찾아 상상하는 과정 중에 어디까지 도움 받고 어디부터 스스로 해야 하는지 그 중간 지점에 답이 있지 않을까? 그 답을 찾아가고자 하는 김주호 교수의 연구를 앞으로도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