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딸에게 힘이 되어 주는 부모의 말공부
외계인이 지구에 쳐들어 오지 못하는 이유는 중2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어릴 때부터 항상 밝고 자신 있고 의욕에 가득 찼던 우리 큰 아이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왔다. 한창 교우 관계를 쌓아 가던 시기에 갑작스레 아빠 따라서 중국으로 국제 학교에서 안 통하는 영어로 지내야 했고, 겨우 적응할 즈음에는 코로나 사태로 쫓기듯이 한국으로 돌아와서 연고도 친구도 하나 없는 광교에 정착해야 했다. 더군다나 코로나로 학교에 제대로 나가지도 못하는 기간을 견디는 동안, 아이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을 잃고 중 1 겨울 방학에 자기만의 세상에 들어가 버렸다.
그 긴 터널을 중학교 2학년과 함께 걸으며 많은 대화가 했다. 아이의 불안함이 부모의 작은 반응에서 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말이 아니라도 실망하고 단호하고 고민하는 표정에서 아이는 두려워하고 주춤했다. 무의식 중에 드러나는 감정들을 고치기 위해서는 나부터 달라져야 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원하는 기준을 바꿨다. 아이가 예의 바르고, 자재심 강하고, 성실하고, 공부 잘하고, 의욕 넘치고, 하고 싶은 일들을 잘 찾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렸다. 그저, 건강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행복하면 충분하다고 마음을 새로 다졌다.
그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면, 일상에서의 장면들이 달라진다. 공부한다고 하다가 일찍 잠든 아이를 보면, 잘 쉬어서 좋다. 친구들을 불러서 방에서 즐겁게 보내고 있으면 밝아져서 좋다. 친구와 배드민턴을 실컷 치고 오면 건강해져서 좋고, 친구나 선생님들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속상한 마음을 혼자 묻어 두지 않고 풀어내서 좋다.
오늘이 내가 살아가는 마지막 날이면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생각하면서 일상을 살아가듯이, 아이가 오늘이 지나면 내 곁을 떠난 다면 지금 어떻게 대해 줄 까만 생각 한다. 그 덕에 아이는 밝아졌고, 조금씩 자기를 찾아가고 있다. 이제는 공부를 제대로 해야 될 거라며 학원에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부모의 말공부"는 사춘기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아이의 마음과 부모의 마음이 어떤지 들여다본다. 려운 시기를 겪었던 나는 그보다도 훨씬 더 낮은 마음가짐으로 대하고 있기에 사실 책에서 제안해 주는 대화법이 막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이 있었다. 다들 그러는구나. 우리 애만 그러는 것이 아니구나. 긴 인생을 살아가는데 다들 힘든 시기들이 있을 것이고 그 시간을 견디고 나면 또 더 단단해져서 살아가겠구나.
왜 진작 그러지 못했을까 후회하는 마음이 아니라 안도감으로 책을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이에게 무언가 못 마땅한 것이 보일 때, 그런 걱정과 불편함이 혹시 아이가 아니라 나의 바람 때문은 아니었는지 꼭 비춰 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말고 내가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아이는 아이대로 자기 나름의 삶을 또 살아 나갈 거다. 그거면 사실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