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물량을 챙겨 주던 울타리가 사라지면 각자도생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자동차 산업이 다른 산업과 가장 큰 차이점을 들자면, 정말 많은 부품이 대량으로 필요하다는 점이다. 자동차보다 큰 제품들도 있지만 자동차만큼 대량 생산하지 않고, 자동차보다 많이 생산하는 제품들은 자동차만큼 많은 부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동차를 만드는 일은 부품 업체 공급망(Supplier-Chain)을 잘 관리하는 것과 같은 말이었고, 이런 공급망 관리의 노하우가 새로운 기업들의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는 것을 막는 진입 장벽의 역할을 해 왔다.
그중에서도 핵심 부품들, 엔진을 만들거나, 엔진을 제어하는 핵심 부품인 인젝터와 컨트롤러 혹은 변속기를 만드는 업체들과는 단순한 부품회사 이상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핵심 부품 업체의 생산 능력이 곧 자동차 회사의 생산 능력이 되고, 그들의 기술 수준이 자동차 회사 제품의 품질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GM과 Continental, 르노와 Simmens, 폭스바겐과 보쉬처럼 서로에게 핵심이 되는 부품을 제공하고 기술을 공유하고 규제에 공동 대응하면서 상생해 온 파트너들과의 연합이 있었다.
아예 자회사로 만든 업체들도 많았다. 특히 일본 업체들은 특유의 그룹 경영 방식을 통해서 ECU와 변속기 회사들을 준 자회사 형태로 운영하고 중간에 공동 개발 회사를 세워서 자동차 개발비를 분담했다. 도요타는 아이신과 덴소를, 닛산은 히타치와 자트코를 거느렸다. 우리나라도 현대차 그룹도 현대 케피코와 현대모비스를 통해 주요 부품들을 납품받고 있다. 자회사이기 때문에 원하는 사양에 대한 맞춤 설계가 가능하고, 생산 계획의 변경에도 유연하게 대응도 가능했다. 모회사와 핵심 부품 자회사도 함께 성장한 셈이다.
이런 고리가 약해지기 시작한 것은 자율 주행과 전동화가 본격적으로 자동차 시장의 메인 이슈로 부상하고 난 이후다. 엔진보다 훨씬 간단하고 개발도 어렵지 않은 모터는 굳이 첨단 기술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배터리는 전자/기계 베이스인 기존 업체들과는 다른 화공학을 기반으로 한 대규모 투자 사업에 가깝다. ADAS에 들어가는 다양한 센서들과 SW들은 변화하는 속도가 빠르고, 경쟁력 있는 중소 스타트업들이 경쟁자로 출현했다.
자동차 회사 입장에서는 필요로 하는 굳이 비싼 로열티를 지불해 가면서 자회사의 제품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 들었다. 더 싸고 질 좋은 업체로 갈아타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더 유리했다. 누가 더 최신 기술을 적용하는지가 매출을 판가름하는 속도전에서도 덩치가 큰 기존의 부품업체들보다 가벼운 새 기업들의 대응이 더 빠르고 유연한 면이 많다.
부품 업체 입장에서는 내연기관 차량에서 제일 비싼 부품이었던 ECU의 수요가 점점 줄어드는데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ECU에 규제를 대응하는 기술력을 앞세워 원가보다 더 비싼 가격에 공급하면서 충분한 수익을 확보했었는데 대부분의 엔진 라인업이 하이브리드화되면서 엔진 자체의 가짓수는 줄었다. 거기에 규제 대응을 위한 추가적인 기능들을 구현하는데 개발 비용은 더 증가하고 있다. 개발비까지 감안하면 ECU 및 주변 장치의 공급 단가는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그럴수록 자동차 회사들은 해당 라인업의 내연기관 모델을 줄이고 전기차로 전환해 버리기 일쑤다. 필요한 비용은 커지고 수요는 줄어드니 모회사의 수요만 쳐다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런 양 측의 상황이 맞아떨어져서 최근의 부품회사들의 구조를 보면 3가지 특징을 보인다. 일단 회사를 여러 부문으로 분사해서 내연기관, 모터, 배터리 팩, 자율 주행 등을 축으로 전문성을 키우도록 독립시킨다. 델파이는 아예 내연기관 부문을 모두 컨티넨탈에 넘기고 자율주행 기능만 특화해서 APTIV로 독립했다. 지멘스, 콘티넨탈, 현대모비스 모두 내연기관의 비중을 줄이고, 전동화와 차량에 들어가는 다양한 센서들 그리고 이를 구현하는 SW 서비스 제공으로 사업 방향을 다변화하고 있다.
모회사에 뿐 아니라 다양한 자동차 회사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세일즈를 보이는 것도 눈에 띈다. 년 매출의 90% 이상을 현대차에 납품하고 있는 모비스의 경우 최근 다양한 자동차 회사에 배터리 팩 전문 업체로의 오퍼를 내고 있다. 도요타 계열의 덴소도 사실상의 종속 관계에서 벗어나 일본 내 다른 기업과 독일 업체들로 확장해서 현재 매출의 50% 정도만 도요타 그룹에 납품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실제 자동차회사에서 가지고 있던 지분도 점점 줄어든다. 작년 11월 도요타는 덴소의 10%에 해당하는 주식을 매각해 EV 개발 투자에 쓰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얼마 전에는 덴소가 보유하고 있던 도요타의 주식을 전량 매각한 바 있다. 서로 간의 상호 출자로 맺어져 있는 끈을 끊고 각자도생의 길을 가겠다는 양사의 의지가 읽힌다.
그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수요가 크고 끈끈했던 도요타와 덴소의 관계마다 독립하게 된 사실은 그만큼 자동차 산업에서 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과 영원한 파트너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모회사를 떠나는 자회사들에게는 월급봉투처럼 편안했던 늘 있던 수요 물량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기도 하다. 각자 자신의 강점을 시장에서 인정받아 새로운 파트너들과의 협업을 찾지 않으면 작금의 자동차 부품 무한 경쟁 시대에서 살아남기는 녹록지 않다. 생존을 위해서는 끊어지기 전에 먼저 끊고 실력으로 선택받기 위한 준비를 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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