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상인 씨.
생일 축하합니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아직도 우리 곁에 머물러 있지만 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가을이 왔음을 느끼게 합니다. 어서 더 선선해져서 함께 경치 좋은 곳으로 놀러 가고 싶네요.
올해로 우리는 알고 지낸 지 26년이 되고, 결혼해서 함께 살아 간지는 18년이 되었습니다. 참 긴 시간이지요. 특히 올해 저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남은 삶은 당신과 함께 배우고 글 쓰고 강연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보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루 대부분을 함께 하는 진짜 파트너가 된 셈입니다.
이번 결정도 큰 건이지만, 우리가 함께 살아온 긴 시간들 여기저기엔 참 중요한 결정들이 많았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공부를 이어가고, 취직을 하고, 파견을 가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부모님을 모시고, 이사를 가고.... 어느 것 하나 쉬운 결정이 없었죠.
그런데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그 선택의 순간들에 문제가 어렵고 답이 잘 안 보이면 저는 당신에게 마지막 결정을 하게 하곤 했습니다. 그러는 게 당신을 위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얼마 전 상담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서로 뜻이 안 맞는 상황이 두려워 문제를 회피하신 건 아니냐고 말이죠.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고민해도 어려운 일들을 홀로 답을 찾아야 했던 당신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부담스럽고 힘들었을까요. 당신 본인보다 나와 가족을 늘 더 생각하는 당신이 내린 결정 덕분에 우리는 참 따뜻한 시간들을 보냈지만 당신은 그때마다 얼마나 많은 걸 내려놓아야 했을까요.
인생은 늘 선택을 강요합니다. 당장 오늘 하루 어디서 어떻게 보낼 지도 정해야 하죠. 오늘 같은 날에는 주인공인 당신이 원하는 걸 하는 것이 좋을 거예요. 그래도 앞으로는 진짜 어려운 문제들이 앞에 있을 때 "당신 원하는 대로 합시다."라고 마냥 뒤에 숨지 않겠습니다.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듣고, 같이 결정해 봐요. 그래야 진짜 파트너죠. 원하는 것이 달라도 상황이 어려워도 혼자보다 둘이 생각하는 것이 나으니까요.
남은 인생의 절반은 그렇게 당신과 같이 함께 결정하고 또 함께 그 결정대로 살아 보려 합니다. 가끔은 실패하고 또 후회되는 일도 생기겠지만 그럴 수 있지 하고 또 같이 넘어가면 되겠지요 그러다 보면 각자 또 같이 알차게 보낸 시간들이 쌓여 있을 겁니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의지가 되는 진짜 굿파트너가 될게요. 늘 고맙습니다.
2024년 9월 6일
남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