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시장을 견딜 수 있는 포트폴리오 재구성이 필요하다.
미국이 2년 반을 이어오던 금리 인상 기조를 포기하고 0.5% 인하를 단행했다. 코로나 이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던 물가를 잡기 위해 시장에 풀리는 돈줄을 조이기 위해서 계속해서 올린 금리는 어느새 5%를 넘어섰다. 이번에 인하를 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4% 후반대를 유지하면서 우리나라 금리와의 차이도 아직 1.5% 이상난다. 그만큼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박이 여전히 심각하고 그와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기가 꽤 좋지 않다는 신호를 동시에 주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실물 경제는 그리 상황이 좋지 않다. 물가 상승률은 계속 2~3% 대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업자율 상승이 심상치 않다. 상반기에 반짝 좋았던 수치가 사실은 대선을 대비해서 왜곡된 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한 발표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장이 한번 출렁였다. 미국의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대도시의 고층 빌딩들이 재택근무의 보편화와 경기 침체로 공실율이 늘어나면서 고점 대비 30%도 안 되는 가격에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심심찮게 듣는다. 부채를 갚지 못한 건물주들이 파산하면 그들에게 돈을 빌려 준 중소 은행들도 함께 망할 거라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래서 금리가 인하할 거라는 기대감 만으로도 출렁이던 주가는 오히려 금리가 실제 인하되고도 별 반응이 없다. 그만큼 위기라는 공감대가 퍼져 있음을 의미한다.
제로 금리로 전 세계 어디서 생산하든 찍어낸 돈으로 구매해 주던 미국의 경제가 주춤하면서 전 세계 경기도 침체에 접어들었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성장률이 1% 이하로 떨어진 지 오래다.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은 제조업 기반이 약한 회사들은 중국산 자동차들에게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면서 자국 브랜드들 공장들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그나마 굳건하다던 독일에서조차 폭스바겐이 자국 내 공장 일부를 폐쇄하겠다며 노조와의 협상을 시작했다. 관세를 높여서 중국 자동차 진출을 막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국 내 진출을 은근히 유도하는 정책을 펼치는 모습을 보면 유럽이 얼마나 경기 부양에 절박했는지 알 수 있다.
상대적으로 중국은 압도적인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특히 BYD나 GEELY 같은 자국 회사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런 성장은 선진국들의 압박으로 이어져서 주요 시장들에서 관세의 벽이 높아졌다. 중국 내에서도 자국 내 기업들의 성장은 반가운 일이나 빛과 그림자처럼 경쟁에서 밀려난 외국계 기업들은 문을 닫고 있다. 현대차도 2,3 공장을 폐쇄했고, 닛산 혼다 같은 전통적으로 중국 시장에서 강했던 일본 기업들도 감원을 진행 중이다.
그렇게 회사가 나가고 공장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의미다. 오죽하면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해외 투자를 자제하라는 경고를 보냈다. 중국 기업들 입장에서는 정부의 지침을 따르자니 중국산 자동차에 매겨지는 관세가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무시하자니 그동안 받았던 지원이 끊어 질까 두렵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다.
어디 중국 기업들 뿐일까?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이 사실 다 난처하다. 부동산 다음으로 인생에서 가장 비싼 소비재 중에 하나인 자동차는 경기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미 차량 보급율은 일정 비율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선진국 사람들에게 주머니 사정이 위축되면 빵은 사 먹어도 새 차 구매 시기는 더 뒤로 미추게 된다. 더군다나 내연기관 차보다 비싼 전기차는 더욱더 판매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2~3년 전에 전기차 시대가 올 것이라며 투자를 했던 회사들은 떨어지는 공장 가동률과 투자 대비 수익률에 대책이 필요하다. 거기에 갈수록 높아져만 가는 무역 장벽은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차를 사는 사람은 줄고, 어떤 차가 앞으로 잘 팔릴지는 안갯속에 있고, 지정학적 리스크는 커져가는 사면초가 상황이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위험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인하할 만큼 경기가 나빠질 거라면 대책이 필요하다. 일단 지정학적인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서는 생산 공장의 다변화가 필수다. 이미 BMW가 전기차와 거기에 들어가는 배터리 공장을 아시아, 미국, 유럽 등 각 지역별로 분산해서 구성하는 것처럼 관세를 피해서 각개로 현지 시장을 공략하면 두터워진 관세만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특히 미국, 중국, 유럽과 FTA를 맺고 있는 우리나라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어떤 종류의 차가 잘 팔릴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비슷한 고민을 하는 회사들끼리 같이 리스크를 나누는 것도 방법이다. 전기차 개발에 대한 실패를 인정하고 중국 기업들과의 협업을 과감하게 추진하고 있는 폭스바겐이 대표적이다. 자존심이 중요한가 흑묘 백묘를 가리지 않고 나보다 더 나은 기술을 가진 회사와의 협업을 통해 초기 투자비를 아끼고 부족한 기술 라인업을 채울 수 있다. 특히 불황이 만연한 시기에는 주로 저가형 모델과 그와 반대급부로 고급 라인의 판매량이 늘었던 역사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기업들의 포트폴리오를 더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미 2007년 리만 브라더스 사태와 2020년 코로나로 두 번의 글로벌 경기 침체를 겪었다. 그러나 이전의 경험과는 다르게 이번 침체는 경기 부양을 위해 미국이나 중국이 돈을 풀 여유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자유 무역의 시대도 저물어 가면서 공급망의 최적화도 어려운 다가올 미래에는 지난 두 번의 침체처럼 급작스러운 추락은 없지만 그렇다고 드라마틱한 반전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성장이 정체된 뉴 노멀 시대에서 자동차 산업은 생존을 위해 어떤 형태를 갖추어야 할지. 난세일수록 적은 줄이고 친구는 늘리는 외교 전략이 꼭 국방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작금의 경직된 상황을 헤쳐 나갈 우리나라 기업들의 유연한 전략들을 기대해 본다.
자동차 전문 뉴스 매체 아우토바인에 기고한 글을 조금 늦게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