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스로의 지위를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얼마 전 재산세 고지서가 왔습니다. 14년 전에 결혼하면서 샀던 집에 세금이 나왔는데 이번 6월에 공지된 부동산 제재로 지난번에 비해 꽤 많이 올랐더군요. 솔직히 저도 조금 부담스러웠습니다. 가뜩이나 물가는 오르고 수입은 줄어드는 요즘 같은 세상에 불만 있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재산이 있는 것이 죄는 아닌데 왜 징벌적인 세금을 내야 하는 걸까요? 그런 세금 폭탄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값이 폭등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페이스북을 통해 접한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 라는 책에서 작은 단서를 찾았습니다. 1200쪽이 넘는 책에서 저자 토마 피케티는 이렇게 주장(한다고) 합니다.
1. 고대에는 사제/귀족/평민의 계급이 존재했습니다. 지금은 사제 계급은 지식을 독점한 브라만 좌파로 귀족 계급은 부를 독점한 상인 우파로 바뀌었을 뿐, 우리는 여전히 불평등한 삼원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2. 불평등이 심화하는 이유는 이 두 계급이 지식 자본과 금융 자본을 고스란히 자녀 세대에게 물려주기 때문입니다.
조선 시대로 돌아가 봅시다. 양반 / 중인 / 양민 / 천민으로 신분이 엄격히 나누어져 있었죠.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가 없었습니다. 유사 이래로 대한민국은 늘 그런 체제 하에 있었습니다.
그 경계가 흐릿해진 유일한 시점이 광복 이후 법적으로 계급이 사라지고 누구나 공부해서 지식 자본을 확보하거나(브라만 좌파) 저축을 하고 사업을 해서 자본을 벌 수 있는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모 세대들은 그 열린 문으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신분 상승의 기회로 삼았죠. 그렇게 열린 문이 닫히기 시작한 시점이 IMF입니다. 소득과 생산의 성장률이 떨어지면서, 민간 자본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커집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는 사회, 바로 "신분 사회”에 진입하게 됩니다.
돈 있는 사람은 떨어진 아파트와 땅을 사서 월급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부를 축적합니다. 기업가는 필연적으로 자본 소득자가 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의 노동력밖에 가진 게 없는 이들에 대해 갈수록 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자본은 한번 형성되면 생산 증가보다 더 빠르게 스스로를 재생산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과거가 미래를 먹어 치우는 것이죠. [토마 피케티 - 21세기 자본 중]
그래서 사람들은, 사교육에 돈을 투자해서 본인의 지식 자본을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물려 주려 합니다. 빚을 내서라도 아파트에 투자해서 신분 상승을 위한 금융 자본을 어떻게든 확보하려 합니다. 유튜브든 K-POP이든 연예인이든 주식 투자든 IT 대박이든 나를 ANOTHER LEVEL로 인도해 줄 Leverage를 쫓아 가느라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신분 사회에서 계급투쟁하는 거죠.
거기에 북한이라는 존재가 늘 상존하면서, “사유 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좋은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사유 재산”을 신성불가침처럼 인정해야 한다는 의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습니다. 본인의 자산이 어떤 사회적 지원을 통해 형성되었고, 코로나 대응처럼 다양한 공공 서비스는 받기를 원하면서도 본인의 자산을 공공재로 내는 것은 본능적으로 거부합니다. 그리고 그걸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갖은 수단을 찾습니다.
이미 지식 자본 혹은 금융/부동산 자본으로 계층화되었고 사유 재산에 대한 집행이 큰 저항에 부딪히며 그런 자본을 자녀 세대에 물려주는데 거리낌이 없는 사회.
그게 무슨 정책을 해도 아파트 가격이 올라서 정부 욕이 넘치지만 본인이 가지고 있는 아파트 가격은 올라갔으면 해서 주변의 임대아파트 건립은 막고, 세금을 더 걷는다고 하니 경제가 망한다고 데모를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토마 피케티는 이런 21세기 자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진 상속세로 마련된 재원으로 모든 25세 청년에게 기본 자산을 공평하게 나눠주자고 제안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 차원에서 저는 이것이 진짜 필요한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과연 한국에서 이런 시도가 가능할까요? 저 스스로는 제가 가진 지식 자본과 금융 자본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나요? 선뜻 답을 못하는 제가 부끄럽고 함께 연대할 누군가 그리운 크리스마스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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