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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 찾기

by 미하다

'내일 퇴사하겠다고 말해야지' 생각하던 때가 있다. 꽤 최근이다. 요즘은 '언제 퇴사하는 게 좋을까?' 고민한다. 그보단 퇴사의 타이밍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왜 회사에 다니는가 나열해볼까 한다.


1. 일하면서 성취감은 느끼지만, 지속시간이 짧다.

2. 지금 내가 가장 의지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회사 동료다.

3. 지금 가장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친구는 동료들이다.

4. 그 친한 동료들과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지금처럼 지내고 싶다.


나는 일에 대한 성취감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상하는 타입이다. 지금 회사를 다니며 힘들었던 이유는 항상 일과 관련되어 있었다. 사람이 아니었다. 몇 명의 동료는 지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동료들과 메신저로 대화만 나누어도 좋다. 출근해서 같은 공간에 있을 때면 존재 자체로 마음이 든든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내가 회사를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 덕분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글을 조금 더 이어가 보자. 2021.08.03 11:1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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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4 20:14 pm 어제 쓴 글을 읽고, 다시 생각을 펼쳐보려고 한다. 오늘의 나는 왜 일하고, 회사를 다니는 삶을 선택했을까, 어제와는 조금 다른 대답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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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오전 연차를 썼다. 어제 외부에서 일하다가 더위를 먹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어지러워 쓰러질 뻔했던 어제의 아찔한 충격으로, 스스로를 위해 쉼을 선택했다. 6시면 눈이 저절로 떠지는 여름, 애써 1시간을 더 자고 일어났다. 뒹굴거리며 인스타그램도 보고, 닷 슬래시 대시 영상도 찍었다. 빨래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우선 들고 내려가 봤다. 어제 먹다 남은 배달음식과 엄마 반찬 4종류도 챙겼다. 분리수거할 쓰레기도 야무지게 챙겨 들었다. 서른 인생 딱 1번 사용해 본 드럼세탁기와 건조기 앞에서 멈칫했지만, 차근차근 빨래를 시작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기를 가만히 바라보고 싶기도 했지만, 잘 먹는 게 중요했다. 계란찜과 밥, 목살 5점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엄마 반찬을 예쁘게 꺼내 두고 밥을 먹었다. 좋아하는 예능은 필수다. 내게 필요한 건 이런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건조기를 돌리고, 스쳐가는 생각은 인스타그램에 남기고, 오늘 밤 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오전 시간을 충만하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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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30분, 출근해야 할 시간이다. 1시부터 2시까지 예정된 회의는 1시간이나 더 길어졌다. 회의가 길어지면 답답하기 마련, 하지만 오늘 회의는 속이 시원했다. 솔직한 의견이 꼭 필요한 자리에 다양한 시각의 이야기가 샘솟았다. 그런 회의는 극히 드물어 나는 오늘 회의가 퍽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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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기 10분 전, 야근 신청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오늘은 그만 퇴근하기로 다짐했다. 일보다 내가 중요하니까, 오늘은 조금만 더 나를 위해 살아야지. 이기적일지라도, 내 마음대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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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왜 회사 다니지? 근본적으로는 돈일 벌기 위한 행동이다. 다양한 콘텐츠와 물건, 경험을 소비하기 위해서 돈은 반드시 필요하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때때로 극심한 번아웃이 찾아와도 결국 '돈'때문에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나는 그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수많은 행복과 경험, 소비할 수 있는 이유는 돈 때문이고, 그 돈은 회사에 노동을 제공하고 차지하는 합당한 대가다. 20대에는 '돈 때문에 회사 다닌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나쁘게 보던 시절도 있었다. 서른이 되어 다시 생각해보니, 돈 때문에 회사 다니는 게 맞다. 돈은 중요하고, 돈을 주는 회사는 나름 소중한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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