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pus Script : 탑골순대국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 715-4

by 그리울너머

탑골순대국

안성의 한적한 만세로를 벗어나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오면 서울로 가기 전, 도로는 늘어난 차량의 행렬로 붐비기 시작한다. 차량들을 뒤로한 채로 수도권 남부의 대표적인 주거 밀집 지역, 용인 수지구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한 식당이 있는데 이 식당의 앞엔 새벽불에도 항상 주차 차량으로 붐빈다.


풍덕천동(豊德川洞)에 위치한 수지구청역 인근은 이 지역의 가장 오래된 번화가이자 중심지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수백 개의 학원이 밀집해 있어, 거리에는 늦은 밤까지 가방을 멘 학생들과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뒤섞여 흐른다. 가장 현대적이고 세련된 빌딩들이 즐비한 이곳 뒷골목에, ‘탑골’이라 불리는 구역이 있다.

'탑골'은 푸짐하고 정겨운 장소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기도 하는데 도심을 뒤로한 채로 투박한 옛 지명으로 불리는 이름은 단순히 누군가가 지어낸 별명이 아니다. 실제로 이 골목 한편에는 ‘탑골어린이공원’이 자리하고 있고, 과거 이 마을에는 작은 절과 함께 ‘석탑’이 하나 서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탑이 있는 동네, 즉 ‘탑골’ 혹은 ‘탑동’이라 불렀다. 풍덕천동의 탑골은 ‘탑마을’이라 불렸던 옛 지명이, 신도시 개발 이후에도 공원의 이름으로 남아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화면 캡처 2026-01-08 233550.png 업체 제공 사진

25년을 멈추지 않고 뚝배기 위로 쌓아 끓여낸 시간

가게 상호인 ‘탑골’은 본래 서울의 탑골공원처럼 ‘서민들이 부담 없이 모여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장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그 이름의 뜻을 새롭게 해석하곤 한다. 순대국을 주문하면 머리 고기가 뚝배기 위로 마치 ‘탑’처럼 높게 쌓여 나올 정도로 가득 담긴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순대국이라 하면 수원의 골목이나 병천의 장터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곳은 25년이라는 업력에도 불구하고 수원이나 병천을 제치고 전통의 반열에 올랐다. 그 국물의 깊이와 맛이 물리적인 시간을 가볍게 뛰어넘기 때문이다. 장사가 잘돼 25년 만에 본관 바로 옆 건물에 신관을 세웠다는 그 자신감이야말로, 이곳이 진짜 맛집이라는 확실한 방증이다.


화면 캡처 2026-01-08 235408.png


가게로 들어서면 막 삶아 김이 펄펄 나는 머리 고기들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시각을 압도하는 장면에 더해 국물을 한 술 뜨면, 사골로 고아낸 듯 잡내 없이 깔끔하면서도, 고기를 듬뿍 넣고 우려낸 특유의 진한 육향과 담백함이 공존한다. 보통의 순대국이 국물과 고기가 겉도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다르다. 아마도 육수를 끓일 때 고기를 따로 삶지 않고 함께 넣어, 그 맛이 서로에게 깊이 배어들게 한 덕분이 아닐까 짐작게 한다.

뚝배기 한 그릇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주방 안에서는 수많은 사람의 거칠고 분주한 손길을 거쳤을 테다. 그 지난한 정성에 비해 가격은 놀라울 만큼 합리적이다. ‘서민들이 부담 없이 모여 배불리 먹는 곳’이라는 탑골의 본래 의미와 완벽하게 일맥상통하는 미덕이다.


이 정성 어린 한 그릇은, 숙취로 고생하는 날이면 한 시간을 운전해서라도 기어이 찾아오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다행히 본관과 신관이 나란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 긴 기다림 없이도 이 근사한 맛을 누릴 수 있다.


가난했던 대학 시절에는 저렴하게 배를 채우는 생존의 음식이었지만, 이제는 지친 몸과 마음의 기력을 달래주는 영혼의 음식이 되었다. 시간은 흐르고 시절은 변한다. 하지만 25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끓여낸 이 진국을 맛보러, 아무 날 한번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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