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후에 한국 복귀까지 2주간의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어디 여행이나 다녀올 생각으로 넉넉히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여행은 커녕 마지막날까지 밴쿠버 생활을 정리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네요.
처음 도착했을때에 도와주셨던 어르신들께 인사도드리고,
타국에서도 한국인의 정을 느끼게 해주었던 형, 누나, 친구들과도 인사나누고,
더이상 사용할리 없는 모든 문서/계정/계좌/요금 들도 다 정리하고,
세간살이들 팔건 팔고, 버릴건 다 버리고,
차가 없다보니 하루에 한 건씩만 처리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2주가 훌쩍 지나가 버리더군요. 그리고 마지막 날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두고가는 것이 없나 집안을 훑어본뒤 문을 나섰습니다. 그동안 음식이라던지 편의등을 제공해 주었던 집주인분께도 감사인사를 드리며 열쇠도 반납했고요. 집주인분은 인도 분이셨는데, 조용한 환경에서 지낼수 있게 배려도 많이 해주시고 음식도 많이 나눠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끔씩 올라가서 고장난? 컴퓨터를 수리해 드리기도 했고요. 가까운 이웃사촌 지간으로 즐겁게 지냈다고 생각됩니다.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안에서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힘든일이 많았던 만큼 그보다 더 감사한일들이 많았다는 사실도요.
캐나다 처음 도착을 따뜻하게 맞아운 분들과,
얼마되지않아 얻게된 좋은 직장과 그곳에서의 헐리웃 영화제작 참여,
그리고 어려울때 짜잔하고 나타나 한국인 형들과 그들이 알려준 이 생활에 적응하는 방법들,
자연스럽게 만나고 친해지게 된 여러 나라의 친구들,
멀어져서야 알게된 가족과 여자친구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겁도없이 이곳까지 홀로와서 어디 아픈데 없이 묵묵히 버텨준 나 자신까지,
온통 감사한 일들 뿐이더라고요. 참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운, 내 인생에서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허락해준 모든 이들에게 마음속으로나마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팀홀튼 도넛과 아이스캡을 마지막으로, 한국행 비행길에 올랐습니다.
27일 퇴근길로 점점 복잡해질 시간, 인천공항 입국장에 들어섰습니다. 캐나다 통신사 유심이 아닌 그동안 가지고 있던 한국 유심으로 갈아끼우고 개통을 진행했죠. 여기저기 익숙한 한국말들이 들리기 시작하는데 어찌나 반갑던지요.
제일먼저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고, 친형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형이 인천공항까지 데리러 와주었기 때문인데요. 저와 11살 차이나는 우리 형은 누구보다 저를 아끼고 위해주는 사람입니다. 저보다 먼저 훨씬 이전에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홀로 떠났던 사람이었고, 제가 떠나기를 결심하니 그 어느 누구보다 응원해준 사람이었거든요. 그렇게 우리는 강원도로 향하는 차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했는지,
친구들과는 작별인사를 잘 했는지,
앞으로 일하게될 회사는 어떤지,
어떻게 지낼 생각인지,
그리고 형은 마지막에 한마디를 더 붙여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앞으로 일하게될 회사에서도 영어공부 열심히하고, 기회가 되면 꼭 캐나다 가서 살도록 해. 가족 걱정은 하지말고.‘
2주간의 짧은 적응을 마친 후 저는 새로운 회사로 출근을 했습니다. 이전과 다른 회사이기에 새로운 파이프라인과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야했죠. 하지만 주위에 한국분들 덕분에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메뉴얼들을 한국어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기도 했으니까요. 외국과는 사뭇다른 한국만의 친절한 분위기...그리웠습니다.
말 안통하는 타국에서도 적응해서 일했는데...이정도 쯤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지. 라는 생각이 있어서 더욱 자신감있게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저의 새로운 일이 시작되었고, 염원하던 한국에서 '헐리웃 영화 작업하기' 를 할수있게 되었습니다.
일터에 적응할 무렵, 주위 동료들을 통해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됐습니다.
MPC Vancouver office closing
저에게 기회를 주고, 1년 6개월 간의 밴쿠버 생활을 꽃피울 수 있게 해주었던 'MPC vancouver office' 가 문을 닫는 다는 소식이었죠.
이 소식은 밴쿠버에서 같은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는데요.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들도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수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죠. 그리고 그 사실을 문 닫기 하루전에 메일을 통해서 통보했다는 내부 직원의 폭로가 충격을 더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내게 많은 추억을 주었던 회사가 이러한 방식으로 직원들을 해고하고 문을 닫았다는 사실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무모하게 시작했던 저의 워킹홀리데이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무모하게 내던져진 만큼 적응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고, 그만큼 운도 많이 따라주었던 여정이었죠.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정말 늦은 시기이다. 그러니 바로 시작해라. 라는 명수옹의 명언을 직접 실행에 옮겼고, 나름 만족했고, 앞으로도 도전하는 삶을 살수있겠다라는 원동력을 얻은 여정이었습니다. 내가 정말 우물안에 개구리처럼 살고 있었구나 라고 느낀 시간들이기도 했죠.
한국에서만 있었다면, 다른 나라 회사들, 사람들은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다른 문화권에서는 '일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한지. 그리고 일이 아니라 자신의 삶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다른나라의 문화를 일년반 동안 체험할 수 있는 기회는 제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다시 바라보게 해주었죠.
그리고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가족들과 여자친구, 친구들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낀 계기도 되었습니다. 역시 멀리 떨어져봐야 그 소중함을 알게된달까요.
이 글을 마무리하며, 자칫 중간에 끊겨서 영원히 마무리 짓지 못할뻔도 했지만, 다시 돌아올수있도록 응원해주신 분들, 댓글달아주신분들, 그리고 이글을 읽고계신 분들께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