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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ckypinkpiggy Jul 23. 2021

삶의 의미를 구할 때 상징이 필요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 『해변의 카프카』


"상징이라는 것은 중요한 거야" 하고 키가 큰 병사가 말한다. "우리는 마침 총을 갖고 있고 이런 군복을 입고 있으니까, 여기서도 역시 보초 같은 역할을 맡고 있지. 역할. 그것도 상징이 이끄는 거거든."
"너는 무언가 그럴 만한 것을 갖고 있어? 표시가 될 만한 것을?" 하고 건장한 병사가 묻는다.
나는 고개를 흔든다. "아뇨,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어요. 갖고 있는 것은 기억뿐입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산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겠어" 하고 나는 말한다.
"그림을 보면 알게 돼"라고 까마귀 소년은 말한다. "바람의 소리를 듣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너에겐 그걸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누군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심연으로 침잠하는 고민을 꺼낸다면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사람은 기억을 먹고 산다. 어떤 기억은 마음속에 오랫동안 머물며 과거에도 그만한 기억을 쌓았으니 앞으로도 그런 기억을 더 쌓을 수 있을 거라 담보하는 증명이 되기도 하고, 사는 내내 외롭지 않도록 바깥의 추위를 이겨내는 뭉근 불의 불씨가 되어주기도 한다.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과거가 여전히 마음속에 머무르고 있단 걸 자각할 때에야 우린 사는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게 된다. 가끔은 세상 밖으로 내모는 듯한 무력한 외로움이 삶을 뒤흔들기도 하기에 그 기억이 여전히 마음속에 있단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슬픔과 외로움으로 무너지는 날에도 그 사실을 잊지 않는 초연한 자세는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상징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치 해리포터에서 볼드모트의 영혼을 나누어 저장하듯 -물론 우린 마법사가 아니고 마법도 쓸 줄 모르니 다른 이의 영혼을 물건에 넣어둘 수 없다. 다만 그 사람이 곁에 있었음을 특정한 물건을 통해 환기하는 것이다- 우린 기억을 저장하는 물건을 마련할 수 있다. 책 속에서 다무라 카프카는 사랑하는 사에키 씨를 추억하는 물건으로서 함께 즐겨 바라보곤 했던 해변의 그림을 선물 받는다. 사에키 씨는 여전히 '산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다무라 카프카에게 유품으로 이 그림을 건넨다. 기억이 담긴 물건은 어떤 말도 없이, 깊은 침묵 속에서 그런 삶의 진리를 알려준다. 아니, 이 그림은 가르쳐주는 것, 알려주는 것 따위가 아니라 스스로 '산다는 것의 의미'가 되는 것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어떤 설명도 덧붙일 필요 없이 스스로 삶의 의미를 나타내는 상징이 됨으로써, 그 그림을 보는 카프카는 언제나 그 상징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삶은 너무나 길고 그 속에서 자주 길을 잃는 우리는 그런 상징이 필요하다. 산다는 것의 의미를 잃었을 때, 이를 일깨우는 기억의 상징을 곁에 둔다는 건 추운 겨울날에도 꺼지지 않는 벽난로에 손을 녹일 수 있단 게 아닐까. 무엇이든 그런 상징이 될 수 있다. 괴테 말마따나 세상의 만물은 메타포니까. 소중한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도, 그 사람으로부터 선물 받은 작은 컵도, 그 사람이 아끼던 책도 그런 메타포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구체적 감각 대상으로서의 물질이 그런 상징의 역할을 맡아야 한단 점이다. 기억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대개 머무르고 있단 사실조차 잊기 쉽지만, 물질의 감각적 물성은 더 선명하게 그 기억을 재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살게 하는 건 언제나 지독한 외로움을 가로지르며 충만한 지난날을 환기하는 그런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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