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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ckypinkpiggy Feb 09. 2022

두루 평안하다는 건, 사소한 불행을 잘 감췄다는 뜻

레이먼드 카버 - 『대성당』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오. 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에 있으니.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레이먼드 카버는 간결한 문체로 담백하게 온갖 일상사를 묘사한다. 일상이란 건 '매일'의 다른 이름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나빴다가 좋아지곤 하는 기분처럼, 하나의 이름으로 묶을 수 없을 것 같은 감정들은 일상 안에 공존한다. 그래서 우리의 매일은 대개 몹시 나쁘기만 하지도 않고, 아주 좋기만 하지도 않다. 대부분 좋고 나쁘다 또 조금 슬퍼지고, 다시 좀 살만해질 뿐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에서는 많은 주인공이 그런 감정의 질곡을 지나치며 자신의 마음속 무언가가 변했음을 깨닫는다. 레이먼드 카버는 '더러운 리얼리즘(끔찍한 일을 다룰 때도 감정 표현을 아껴서 간결하고 함축성 있게 그저 표면만 묘사하는 방식)'을 구사하며 내면묘사를 하지 않고 이를 투명하게 지시하지도 않지만 소설의 끝에서 어떤 주인공들은 분명 다르게 표현된다. 독자는 이를 깊이 응시하며 자신의 감추어진 내면 또한 주인공처럼 은근하게, 변화했음을 느낄 수 있다.


「깃털들」에는 두 부부가 나온다. 잭-프랜 부부는 "두루 평안한" 버드-올라의 집에 초대받고 방문했다가 공작을 목격한다. 공작은 그들의 차에 올라가기도 하고 집안에서도 돌아다니다가 사라진다. 레이먼드 카버가 공작을 어떤 이유도 없이 등장시켰을 리 없다. 버드는 공작을 'Birds of paradise'라 부른다. 이는 그들의 집이 낙원임을 시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공작은 왜 집 밖으로 쫓겨났을까? 그건 버드-올라 부부가 아이를 낳음으로써 낙원에서 쫓겨났다는 성서적인 이야기와 결부된다. 또한, 그날 올라의 아이를 안아봤던 잭-프랜 부부가 아이를 낳기로 함으로써 그들 역시 낙원에서 쫓겨날 것임을 암시한다. 소설은 아이를 낳은 잭-프랜 부부가 "점점 말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언급하며 끝난다.


이는 아이를 가진 뒤 아이를 부양하느라 소설에 집중하지 못했던 레이먼드 카버의 상황을 대변한다. 비슷하게 「칸막이 객실」에서도 동류의 관점이 드러난다. 마이어스는 아이를 만나기로 한 기차역에서 하차하지 않는다. 그러고선 차창 밖을 바라보며 "풍경이 자신에게서 멀어진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 풍경은 '아이'로 바꿔 읽어도 의미가 전달된다. 하지만 마이어스는 이에 대해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잠든다. 이 지점은 가부장을 전통적인 가족관으로 여기는 한국의 문화와 대비된다. 다른 가족 구성원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의 무기력함을 레이먼드 카버는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삶에선 이런 경우도 있다는 걸 독자들에게 보여줄 뿐이다. 


그렇지만, 아이를 부양하는 일이 힘들다 하더라도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단 뜻은 아니다. 아이를 향한 양가적인 관점은「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읽을 때 더욱 선명해진다. 이 소설에는 아이를 잃은 부부가 나온다. 아이는 생일날 교통사고를 당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며칠 사이에 죽는다. 아이를 돌보던 부부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할 슬픔을 느끼고, 예약해놓은 생일 케이크를 찾으러 가는 것조차 잊는다. 그렇지만 빵집 주인에겐 예약받은 케이크를 판매하는 것이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는 아이의 죽음을 알 길이 없으니 부부에게 계속 전화를 건다. 격노한 부부는 왜 자꾸 전화하냐며 화를 내다가, 아이가 죽은 날 슬픔이 폭발한다. 기어코 빵집으로 찾아가 화를 내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죽음을 들은 제빵사는 부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훈기가 도는 빵을 권한다. 그리고 그들은 날이 밝도록 아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빵집 주인은 어쩌다 이런 삶을 살게 됐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는 중요하다. 외로워지지 않으려면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내야만 한다. 오랫동안 외로우면 저 부부처럼 죄 없는 사람에게 괴팍하게 굴지도 모른다. 제빵사 역시 그들처럼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케이크 때문에 슬픈 하루를 보낸 이일 뿐인데도 말이다. 그러니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마음을 꺼내 보이는 일은, 그렇게 이해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일은, 회복하는 데에 있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아주 깊은 슬픔의 협곡에 빠진 이들도 그 슬픔을 전부 풀어놓는 날에는 다시 조금 더 나아진 기분으로 협곡 밖의 평지로 나와 일상을 꾸릴 수 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그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일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소설은 모두 레이먼드 카버가 재혼한 후 시를 열심히 쓰던 '두 번째 삶'에 쓴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시적 의미가 충만할뿐더러 울림도 크다. 때로는 가혹할 정도로 큰 진폭으로 오가는 일상의 감정사를 담백하게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그건 전혀 편한 일이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일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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