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종종 늦게 발견된다.
정확히 말하면, 보고가 늦게 올라온다.
담당자는 이미 알고 있었고,
중간 관리자는 조심스러웠고,
임원은 “왜 이제 말하느냐”는 다그침의 반복.
하지만 정말 던져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왜 아무도 더 일찍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이것을 용기나 태도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조직의 솔직함은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보고 단계가 많아질수록 내용이 순화된다.
위로 올라갈수록 표현은 부드러워진다.
“위험하다”는 “변동성이 있다”로 바뀌고,
“손실 가능성이 높다”는 “관리 가능하다”로 표현된다.
중간 관리자는 팩트전달자가 아니라 완충재가 된다.
평가가 결과 중심일수록
전달자는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으로 표현을 조정한다.
의도적인 왜곡이라기 보다는
구조가 그렇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과정을 여러번 거치며 보고가 늦어진다.
조직은 숫자를 통해 판단한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다.
숫자가 아니라, 어떤 숫자를 선택해 강조하느냐의 문제다.
가입 건수는 늘었지만 수익성은 악화될 수 있다.
매출은 증가했지만 현금흐름은 나빠질 수 있다.
시장 점유율은 올랐지만 공헌이익은 줄어들 수 있다.
이때 여러 각도로 지표를 지적하는 냉철한 리더가 없다면
조직은 가장 보기 좋은 숫자만 남긴다.
숫자는 나의 업적과 평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물어야 한다.
해지율은 왜 빠져 있는가.
이 성장은 지속 가능한가.
단기 실적 뒤에 남는 리스크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이 없으면 숫자는 방어 수단이 된다.
냉철하게 숫자를 해부하는 리더가 없으면
조직은 결국 스스로를 속이기 시작한다.
출시 전 리스크 검토 회의에서
모두가 시장성을 의심했다.
하지만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위에서 결정된 사안이다”라는 말이 분위기를 만든다.
누군가는 생각한다.
괜히 정면으로 반대했다가 책임질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누군가는 침묵한다.
결정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면 굳이 기록을 남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
결국 회의록에는 큰 이견이 없었다고 정리된다.
몇 달 뒤 손실이 발생한다.
그제야 모두가 말한다.
그때 우려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 우려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회의에서 발언하지 않은 의견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회의 문화를 이렇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의 참석자는 최소 한 번은 의견을 말해야 한다.
찬성이든, 반대든, 조건부 동의든 기록에 남겨야 한다.
지금은 AI 회의록이 기본이다.
누가 어떤 의견을 냈는지 남기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슈가 발생했을 때
발언하지 않았던 사람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기준이 필요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중립으로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필요하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조직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려면
솔직하게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그 의견이 보호되고,
기록되고,
검토되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
솔직함은 분위기로 생기지 않는다.
리더가 불편한 질문을 허용하고,
반대를 책임으로 연결하지 않으며,
숫자를 여러 각도로 검증하는 구조를 만들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는 문화가 있어야
조직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
그래야 판단이 왜곡되지 않고,
그래야 방향이 흔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