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te by Sep 02. 2023

(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누구나 유한한 인생을 살다 떠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했던 사람의 기억은 영원히 남기려 합니다. 집착에 가깝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서 견디기 힘든 부재와 단절의 고통은 글쓰기를 통해 조금씩 치유되기도 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한 글자 한 글자 공백을 채워 넣는 작업입니다. 빈 노트를 채워나가는 작업은 어찌 보면 필사적인 행위니까요.


  사라지려는 것들을 붙잡아 각인시키는 마음입니다. 리본으로 묶어 단단히 내게서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결심입니다. 활자화된 기록은 휘발되는 말과 달리 증거로 남습니다.


  H 님은 20대 디자이너였습니다. 6개월 전에 어머니를 멀리 떠나보냈다고 했습니다.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글쓰기 수업을 신청한 그녀는 어머니라는 단어만 들어도 큼직한 눈에 이내 눈물이 고이곤 했습니다.


“어떤 글감으로 글을 쓰고 싶으세요?”


  그녀는 지금 살고 있는 북촌의 매력에 대해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좁은 골목, 낡은 돌담, 북촌에 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옛 동네의 속살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북촌 어디가 특히 좋으세요?”

“아침에 매일 지나가는 길이요. 자전거를 타고 달려요. 갓 구운 빵 냄새랑, 커피 향기가 온 동네에 가득해요.”


  H님의 글이 북촌의 아기자기한 골목의 감각적인 스케치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첫 번째 글을 써왔을 때, 나는 그녀의 글이 바라보는 지점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글은 결국 같은 지점에 머물렀습니다. 엄마였습니다. 횡단보도에서 휘파람을 불다가 ‘네가 휘파람을 불 때 기분이 좋다’고 했던 엄마를 생각합니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들어간 인사동의 작은 찻집에서는 목련차를 마시며 <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습니다. 기억의 매듭을 따라 한 없는 시간을 보냅니다. 고통스러운 부재에도 불구하고 삐거덕 거리는 나무 바닥 소리를 들으며 과거의 안온함에 잠깁니다.


  전철역 입구의 운현궁을 참새 방앗간 드나들 듯 거니는 그녀의 겨울은 혹독합니다. 조용히 떨어져 내리는 서설을 바라보며 슈베르트의 자장가를 듣습니다. 궁궐 마루에 걸터 앉아 엄마와 나누던 시시콜콜한 전화 통화가 눈발 사이로 흩어집니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남자친구를 운현궁에 데려갑니다. 함께 그때 그 마루에 걸터 누워 하늘을 봅니다. 처마 끝에서 빙그레 웃음 짓는 하늘에서 그리운 얼굴과 만나게 됩니다. 부재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견디기 힘든 나날들을 조용히 통과하는 북촌 아가씨의 기록입니다.


   그날도 어둠이 내리는 북촌의 좁고 기다란 골목을 걸어 그녀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문학을 사랑하기에 <위대한 개츠비>의 한 문장이 위로해 줍니다.


  “다시는 단 하루도 당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


  어떤 이에게는 하루하루가 새롭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하루하루가 저물어갈 뿐입니다. 그녀의 글쓰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닮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전 07화 (7) 제가 글을 좀 씁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