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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e by Oct 21. 2023

(10) 글을 잘 쓰면 뭐가 좋아요?

  


      


  

  우리는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해 존중감을 느낍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메모 이상의 무엇인가를 쓰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아이디어를 정리하거나 요약하여 전달하는 것보다 상위의 행위라 생각하지요.


   그것은 그만큼 완성도가 높은 글을 쓰기가 어렵고 복잡하다는 의미입니다. 에세이든, 소설이든, 서평이든, 상품 상세 페이지든, 학술 논문이든 대중이 읽어주는 글은 단정하고 논리적으로 정돈되어 있어야 합니다. 할 말을 하되 제한된 길이 안에서 시작되어 끝나야 하고요. 그러니 물 흐르듯이 쓰기란 사실 집중과 균형감각을 요구하는 고강도 노동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분들이 글을 쓰고 싶어 하니 역설적이지요.     

 


  

  스토리 코칭을 하고 있어서인지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질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답은 저도 잘 모릅니다. 제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어제 쓴 글을 오늘 보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당장 고칠 것이 보입니다. 그래도 매일 글을 읽고, 쓰고, 글쓰기 코칭과 강의를 합니다. 그 이유는 이 모든 과정에서 제 생각이 정돈되어 가는 느낌이 좋아서일 거예요.     


  저는 글쓰기가 ‘생각 정리’라 생각합니다. 글쓴이의 생각이 무서울 정도로 그대로 시각화되어 드러난 것이 글이기 때문이지요. 글쓰기 과정은 나의 생각을 구조화하고,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독자와 연결하는 다층적인 능력을 요구합니다. 그러니 글을 쓰고 고쳐 다시 쓰는 과정에서 정확한 단어와 문장으로 구성하고 전체 글의 의미가 독자에게 오해 없이 정확히 전달되도록 생각을 거듭 정리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문장에 대한 욕심을 내려 놓고 독자가 이 글을 ‘이해하는가’를 우선순위에 둘수록 글은 간결해집니다. 군더더기와 횡설수설이 사라집니다. 때로 글쓴이가 독자에게 미완의 상상의 여백을 남겨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그 여백조차 설계도에 있는 것입니다.    



  제가 글을 쓰며 기억하려 하는 원칙 가지를 정리해 봅니다.      


  첫째, 글을 쓰기 전에 이 글의 주제와 관련된 핵심 메시지를 미리 정의하고 쓰는 것입니다. 핵심 메시지는 내가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명확한 의도입니다. 이 글이 그들에게 어떤 감정, 반응, 행동을 촉발하고자 하는지의 목적성이지요. 그것은 바쁘게 살아가는 독자의 시간을 아껴주고자 하는 일종의 서비스 마인드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누구에게 말하려 하는지 타깃을 정확히 알고 쓰는 것입니다. 이 글처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글을 쓰지만 이 글에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관심을 가질, 보이지 않는 특정 독자를 눈앞에 바라보며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에게 관계없는 이야기는 내가 쓰고 싶었어도 과감히 삭제할 것이고, 그들의 욕망, 관심사, 꿈에 구체적인 정보가 되는 글에 집중하게 되겠지요. 이 글이 끝났을 때 독자가 내게 전하는 한마디를 말풍선으로 상상하며 씁니다. 독자가 이 글로 인해 어떤 액션을 취한다면 그보다 더한 보상은 없습니다.     




  

  셋째. 모든 글은 사랑의 편지라 생각합니다. 미완의 관계를 완성해 가려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독자의 마음에 들고 싶을수록 지금 이 단어와 이 문장에 힘이 실립니다. 글쓰기의 욕망은 인정과 사랑입니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누군가와 접점을 찾으러 떠나는 길이고 목적지가 있으니, 눈치를 보거나 비틀거리지 않습니다. 누군가 나를 기다린다고 생각할수록 그렇습니다.            


  넷째, 글은 스토리와 스타일의 결합체입니다. 독자는 글의 내용도 보지만 고유한 문체에 매혹을 느낍니다. 영화에서는 이것을 ‘보이스(voice)’라고 합니다. 같은 말을 들어도 그 사람의 목소리로 듣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은 전하는 사람의 톤 앤드 매너, 은유의 방식, 문장의 리듬감, 나를 부드럽게 이끄는 맵시와 같은 것입니다. 마치 걸음걸이나 말투처럼 나를 정의하는 것이지요. 글을 쓴다는 것은 문장 하나를 통해 나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쉼표 하나도 어디에 놓을지 고민합니다.

     


  


  독자가 글을 읽기 전부터 당신이 어떤 목소리로 글을 놓을지 기대하며 가까이 다가와 앉아준다면 글쓰기는 힘들어도 할만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할 일은 완벽한 문장을 쓰는 것보다 내가 어떤 보이스의 사람인가를 탐색해 나가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독자는 그 누구와도 다른 사람의 글을 원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에게 글쓰기는 얄팍한 기술이 아닌 연마와 반복을 기꺼이 감내해서 한 방울 한 방울 모아가는 더치커피와 같은 저의 기록이라 말하고 싶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건너편에 앉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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