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을 달리느라 느린 것이 불안한 현대인에게, 무더위는 속도의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시정지 구간일지도 모른다. 이맘때면 문득 꺼내 보게 되는 옛 영화,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
주인공 정원은 하루하루 아까운 시간을 산다. 얼마 살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 영화 제목의 8월과 크리스마스의 역설에 갸우뚱하게 되지만, 정원에게는 실제로 그해 8월이 크리스마스처럼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30대 초원사진관 주인 정원은 지금껏 조용한 시간을 지나왔다. 오래도록 군산 읍 같은 모퉁이 자리를 지켜온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사진관이다. 일상은 단조롭다. 사진을 찍고, 현상하고, 찾으러 온 사람들에게 사진을 건네고 유리창을 닦거나 지치면 괘종시계나 선풍기 앞에 앉아 창밖을 본다. 친구도 거의 만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 녀석은 기억도 하지 못하는 옛이야기를 정원은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뭘 그런 걸 다 기억해?'핀잔에 빙긋 웃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의 분주한 삶에 비해 정원은 기억 사이사이로 중요한 사건들이 없었다.
그의 이런 성정은 가족과도 관계가 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아버지는 홀로 남매를 키웠다. 그나마 딸이라도 짝을 찾아 떠났으니 되었다. 곁을 맴도는 아들이 딱하다. 그나마 대파 한뿌리 뽑아 오라는 말에 마당에 앉아 정성껏 씻다가 후드득 빗물을 올려다보는 마음은 어떻겠는가. 여동생 가족이 집에 들르면 으레 변치 않는 아버지 찌개 맛에 감탄을 하곤 한다. 아내를 보내고, 이제는 아들까지 앞세워 보내야 하는 아버지는 마른 고목처럼 얼굴에 표정도 말도 없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있는 시간은 대부분 고요하다. 그렇게 표현이 적은 정원도 가끔 잠든 아버지 방문을 열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오거나, 천둥 벼락이 치는 밤 문득 죽음이 두려울 때 아버지 방으로 들어와 눕는다. 아버지가 침을 삼키는 장면을 보고서야 관객은 아버지가 잠들어 있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침묵의 세계에서 자란 정원에게 주차관리원 다림의 등장은 깜짝 선물 같은 것이다. 당돌하고 당당하고 이리저리 질문을 해대는 발랄한 어린 아가씨를 대하는 정원의 마음은 여러 단계를 거쳐 서서히 빗장을 열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있기에 마음을 따라갈 수 없다. 영정사진을 찍으며 지내온 정원은 이미 삶의 일시성을 관조하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일시성에도 불구하고 파랑새가 날아와 앉을 때, 정원은 어찌해야 좋을지 모른다. 당황스럽게도, 문득 유한한 것을 멈추고 영원한 것으로 역주행하고 싶은 희망이 생긴다. 죽음을 알고 있었는데 죽고 싶지 않으니, 준비 못한 고통이다.
다림이 그의 삶에 나타난 무더운 여름에서 겨울로 가는 과정에서, 정원은 처음 감정의 동요를 보인다. 처음 이불을 덮고 숨 죽여 오열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나 곧 죽는다! 하하하' 하고는 취기에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린다. 자기가 떠나고 나면 어머니와 함께 보았던 외국 영화 비디오조차 더 이상 보지 못할 노쇠한 아버지가 리모컨 사용법을 제대로 기억 못 하는 것에도 화를 낸다. 창호문 뒤 아버지의 크고 검은 그림자는 늘 그랬듯 말이 없다.
영화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정원의 오감으로 느끼는 공감각의 세계로 가득하다. 짧은 내레이션과 어눌하고 짧은 대사, 웃음소리 이외에 모두 공감각의 공간이다. 빗방울, 운동장 아이들의 웃음소리, 괘종시계, 드르륵 사진관 나무문 열리는 소리, 대청마루에 들어서는 햇살, 어깨에 드리워진 노을, 다림이 일하는 곳이 보이는 찻집 창가 유리 위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과 몸을 어루만지던 앙상한 손가락, 말없이 마음을 읽는 여동생과 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다 마당으로 하나씩 뱉어내던 수박씨 하나, 둘, 셋.
무더위가 한풀 꺾이면 어느덧 느린 시간은 지나고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른 시간은 달릴 것이다. 움직임의 관성을 무더위가 찍어 누른 여름 우연히 다시 보았던 오래된 영화에서, 속도와 무관한 생명의 환희를 만끽할 수 있기를. 말없이 통하는 사람, 나누어 먹었던 붉은 수박 한입, 내 이름을 불러주는 수많은 이름들을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만끽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