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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e by Oct 27. 2024

바다 마을에 그네가 있었다

(22) 캐논 비치에서 반나절 살아보기



까뮈는 여행의 목적을 '그 마을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었다. M과 레이지 수잔에서 가정식 아침을 먹고 아직 잠이 깨지 않은 조용한 캐논 비치 중심가를 걸었다.


캐논비치(Cannon Beach)는 포틀랜드에서 한 시간 거리. 면적이 40 제곱 킬로미터에 불과한 인구 1500명바다 마을이다. 여름 최고 기온이 20도, 겨울 최저 기온이 5도라니 이보다 아늑한 휴양도시는 없다. 연간 75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캐논비치 모래 조각 대회(Cannon Beach Sandcastle Contest) 기간에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다. 해변에는 미리 조각 대회 출전작을 연습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할아버지, 삼촌, 오빠, 사촌까지 달려들어 꼬마들과 작품을 만드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실력이다.


6월에서 8월이 이곳을 여행하기 제일 좋은 시기라는데 우리는 운 좋게 7월에 왔다. 일출과 일몰 시간에 헤이스택 록이 물드는 절경을 보아야 한다지만, 안개 너머 희미한 풍경도 운치가 그만일 것 같았다.



캐논 비치 마을의 경제 활동은 마을 중심 거리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호텔, 레스토랑, 바와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 오밀조밀 모여있었고 해안가를 따라 갤러리, 공예품 스튜디오, 독립 서점들도 모여있어 예술과 문화에 대한 이 마을의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작은 마을의 읍내(!)에는 작은 우체국, 작은 은행, 작은 도서관, 작은 슈퍼마켓이 있었다. 나는 사랑스러운 바다 마을 사람들의 장바구니 구경을 위해 마켓으로 들어갔다. 서글서글한 점원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두 시간 정도 캐논 비치에 머물고 가는데요. 여기서 살만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유쾌한 점원은 손가락을 세면서 열 손가락으로도 부족하다며 활짝 웃었다.  

"우선 여기 농장에서 나온 베리가 지금 아주 맛있어요. 블루베리, 라즈베리, 저쪽에 있어요. 원하면 시식하고 사세요. 샐러드에 넣어도 좋고 차에서 먹어도 좋아요. "

베리를 좋아하는 M은 바람같이 달려가 시식을 마치고는 어느새 장바구니에 베리 상자를 넣고 있었다.


"아니면, 캐논비치 잼 유명해요. 수제 잼이거든요. 블루베리, 라즈베리로 만든 거라 여행 기념으로도 좋죠. 저녁에 호텔에서 크래커에 올려 먹어보세요."

점점 M의 장바구니에 들어가는 아이템 수가 늘어갔다.


과일에 관심이 없는 나는 콜라와 맥주 코너를 기웃거렸다. 점원은 눈치챈 것 같았다.  

"바닷가 다녀왔어요? 아님 이제 갈 거예요?"

"지금 막 레이지 수잔에서 아침 먹고 마을 산책하러 왔어요. 도서관이랑 가게 돌아보고 바다로 갈 거예요."

"그럼, 캐논 비치에서 잡은 해산물 가져가서 피크닉 하는 건 어때요? 저기 피크닉 용으로 포장된 것을 사면 돼요. 연어, 조개, 새우... 아, 참 배가 안 고프겠네요. 그럼 치즈나 맥주 쪽 보여줄까요?"

"여기 캐논비치 맥주도 맛있어요?"

"말해 뭐해요!"

그녀는 바로 냉장고로 우리를 데려갔다.



벽면 가득 캐논비치의 로컬 맥주 Pelican Brewing Company가 있었다. 오레곤 수제 맥주인 Voy도 맛있다고 했다. 특유의 과일향에 허브 노트를 더해 만든 로컬 맥주라 꼭 맛을 보라고 했다. 이 지역 축제 지정 맥주라고 해서 Voy로 결정했다.


Voy도 세 가지가 있었다. IPA는 신선한 홉의 과일향과 쌉쌀한 맛이고, Pilsner는 부드러운 끝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맞는다고 했다. 진한 몰트의 풍미와 초콜릿, 커피 노트가 느껴지는 Stout도 있었는데 우리는 둘 다 모험을 하기 싫어 IPA로 샀다.


저녁에 해안가를 바라보며 마시면 환상적인 맛일 것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차가 있었고, 오후에는 아스토리아로 가서 연어를 먹고 영화박물관과 컬럼을 보기로 했기 때문에 피크닉은 그림의 떡이었다.


"치즈 있어야죠?"



그녀가 데려간 곳은 틸라묵 코너였다. 포틀랜드 여행 리스트를 뽑아준 J님이 자신이 먹어본 중 가장 맛있는 치즈와 아이스크림이라 극찬했던 포틀랜드 유제품 브랜드다. 다양한 치즈 중에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 직원에게 추천해 달라고 했다.


"아까 Voy 맥주 IPA로 샀죠? 그럼 틸라묵 체다예요. 맥주가 쌉쌀하니까 치즈는 깊고 고소한 게 어울려요. "

"좀 튀는 것도 하나 사고 싶은데요."

"튀는 거요?"
"한국 코스트코에서 안 파는 거요. 캐논 비치에서 샀다고 자랑하려고요."

그녀는 유쾌하게 웃으며 한 번에 골랐다. 스모크 구다였다.

"참고로, 이건 IPA보다 Ale과 잘 어울려요."


기본 하나와 튀는 것 하나. 그리고 스모크 구다와 페어링 하기 위한 Ale 맥주 하나 추가. 현지인과 함께 하는 즐거운 장보기가 끝났다.


마지막으로 틸라묵 아이스크림을 한번 먹어보고 싶어 냉동 코너로 갔다. 엄청난 크기의 통에 담긴 아이스크림 밖에 팔지 않았다.

"틸라묵을 컵이나 콘으로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계속 차로 이동해서 보관할 곳이 없어요."

그녀가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며 알려준 곳은 길 건너편 사탕가게였다.  



건너편 사탕가게 Schwietert's Cones & Candy는 미국인들에게 어린 시절 추억의 대명사라고 했다.  레트로 스타일의 사탕, 옛날 초콜릿, 젤리빈, 추잉껌, 특히 수제 캔디가 가득했다.


여기서 판매하는 94가지 맛 솔트워터 태피(Saltwater Taffy)는 미국에서 특히 해안가 지역 사람들에게는 그냥 '묻지 마 사탕'이라고 한다. 찐득하게 어금니 사이사이 끼어도 좋던 우리나라 캐러멜 사탕이나 눈깔사탕 같은 것인가 보다. 


여기서 드디어 틸라묵 아이스크림 콘을 살 수 있었다. 두가지 맛 두 스쿱을 올려 M과 나누어 먹었다. 아이스크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입에도 맛이 있었다.


나중에 포틀랜드를 떠나면서 공항에 틸라묵 가게가 있기에 들어갔는데 마침 그날이 내셔널 아이크림 데이였다. 무료 1 스쿱 추가해서 3 스쿱을 주는 날이었다. 내가 세 덩어리를 다 먹고 1킬로 몸무게가 늘어 비행기를 탔으니 틸라묵 아이스크림 인정.

   


아이스크림 가게 정면에 우체국이 보였다. 옛 서부영화 세트장을 방불케 하는 캐논 비치 우체국(Cannon Beach Post Office)이었다. 기념엽서를 한 장 쓰고 싶은 곳. 기념 우표나 마그넷이 있었을 텐데 못 들른 것이 아쉽다.


바로 옆에는 작은 마을 도서관이 있었다. 이 지역의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와 해안 마을 특유의 정서를 잘 살리는 나무 간판이 아름다운 도서관이었다.



독서와 지식,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장식들과 이 설치물을 기증한 사람에 대한 감사 문구도 보였다.


"그는 독서와 오리건 해안을 사랑했다(He loved reading and the Oregon coast)"


생전에 독서와 자연을 사랑했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 할머니들이 소곤대며 대화하는 사랑스러운  도서관을 둘러보고 우리는 장바구니를 차에 넣고 바다로 걸어갔다.


바다로 가는 길목에 바다 마을 사람들의 사랑스러운 집이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정원에는 수국이 있었고 아이들을 위해 만든 듯한 나무집도 있었다.




바닷가가 보이는 집 마당이 보였다. 그네가 있었고, 그네 위에 작은 돌이 하나 올려져 있었다. 흔들리는 그네와 그 작은 돌이 서로 잡고 있었다.


까뮈가 말했던 그것.


나는 이국의 마을에서 '그 마을 사람'이 되어 있었다.






20240719


Canon B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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