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노래하고 있었던 거야? “

<코러스>의 소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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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의 각 부위를 섞어 갈아 소시지를 만든다. 본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아예 찾을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갈아 같은 튜브에 담은 소시지나, ‘연못 바닥’이라는 이름의 소년원 아이들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2010년 프랑스 영화 ‘코러스(Les Choristes)’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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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직후 겨울의 프랑스, 음악가로 살았으나 인생이 녹녹지 않았던 마띠유 선생 역시 이 곳 아이들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소년원에서 교사를 구한다는 신문광고는 그에게 한 줄기 빛과 같았다. 가르치는 일이라니 근사하지 않은가.


물론 말이 선생이지, 소년원의 비행 청소년을 감시하는 상근 교사의 조건은 숙식 제공이다. 가방끈도 연줄도 배경도 변변치 않은 전직 음악가는 그렇게 묵직한 소년원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묵직한 철문은 들어갈 수는 있어도 나올 수는 없는 감옥의 철문과 같은 소리를 내며 등 뒤에서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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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이 철문은 영화 내내 꽤 상징적인 의미로 있다. 말썽 많은 모랑주의 엄마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져 어설픈 꽃다발을 들고 허둥지둥 외출했던 날, 아이들과 숲으로 피크닉을 다녀온 날, 그리고 이 학교에서 쫓겨나던 날 잠시 열렸던 것을 제외하고는 늪의 삶,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 삶이 그 안에 있다.


마띠유 선생이 음악을 접고 먹고살기 위해 들어온 ‘연못 바닥’ 소년원은 역설적으로 그가 다시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된다. 사소한 저항이나 질문에도 잔인한 체벌과 복종만을 강요당하는 이곳에서도 기를 쓰고 비집고 나오는 아이들의 장난기와 순수함, 호기심과 예술에 관한 관심은 이내 마띠유 선생에게 청춘의 날갯짓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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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띠유 선생은 어쩌면 이것이 그가 하고자 했던 음악일 것이라 직감한다. 아이들이 취침시간 소등 이후에 장난을 치며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은 마띠유 선생은 묻는다.


"너희들 혹시 지금 노래하고 있었던 거야?"


수업시간 일부를 빼서 아이들을 음역에 따라 나눈다. 한 명씩 아는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자, 아이들은 그들이 살아왔던 세계를 고스란히 투영하는 어른들의 밑바닥 삶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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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이에 불러야 할 노래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선생은 곡을 쓴다. 그 곡은 아이들의 합창단이 부를 것이다. 도저히 구제 불능인, 어찌할 수 없는 음치 소년은 악보 스탠드를 들게 하고, 악보를 읽지 못하는 다섯 살 난 어린 뻬삐노는 교탁 위에 앉혀 보조 지휘자 임무를 준다. 제 몫의 코러스 책임은 막중하다. 아이들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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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천사인데 악마 같은 놈이에요. 주의하세요."


온 사감 선생들 사이에 악명 높은 요주의 소년, 모랑주는 본능적으로 음악에 반응한다. 가장 다루기 힘들고, 가장 반항적인 그가 밤에 몰래 칠판의 오선지를 따라 노래하고 있는 것을 몰래 지켜본 음악 선생은 그의 목소리와 절대음감에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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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음악성을 키워 주기 위해 우연히 만난 모랑주의 어머니를 보고 한눈에 반한 선생의 들뜬 행동은 모랑주에게 적대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지만, 두 사람을 이어주는 것은 음악이다. 짝사랑의 쓴맛을 보고 돌아선 선생이나 엄마를 잃을지도 모르는 공포에 반항하는 사춘기 소년이나, 결국은 연정과 결핍을 음악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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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문 앞에서 토요일이면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던 고아 뻬삐노는 선생님이 학교에서 쫓겨난 날도 정문 앞에 서있다. 선생은 아무리 들어가라 해도 버티는 아이를 번쩍 들어 버스에 태운다. 이 소년원에서 자라는 것이나, 아이를 키워 보지 못한 어설픈 아버지와 사는 것과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어린아이가 그토록 기다리던 ‘토요일의 아버지’가 생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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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른 어느 날, 노년에 이른 뻬삐노는 세계적인 지휘자가 된 모랑주의 숙소로 마띠유 선생의 일기를 들고 찾아온다. 일기는 선생님이 ‘연못 바닥’ 소년원을 떠난 날 멈추어 있다. 그날 이후 선생님은 일기를 쓰지 않았다. 일기의 마지막 문장은 ‘나는 실패한 음악가이다’라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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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삶에 잠시 머물렀던 사람의 영향력은 그가 알고 있는 것보다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선생님이 ‘연못 바닥’ 소년원에 머문 시간은 추운 겨울에서 더운 여름날까지의 몇 개월뿐이다. 그 사이 아이들은 웃고 달리고 있다. 종이비행기를 접어 하늘로 날리고, 숲 속을 지나가는 소녀들 모습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한다. 제 목소리를 찾으며, 응당 누려야 할 제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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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재능을 인정받고, 미세한 발전도 경탄의 대상이 되며, 그를 만끽하는 일상을 음악에서 누린다. 늘 그렇듯 그 충만한 시간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종과 힘에 순종하는 습성에서의 짧은 일탈을 친구들과 완성하는 하모니로 채울 때, 그 환희의 기억은 소년들의 평생을 지배한다. 어쩌면 실패한 음악가 마띠유 선생의 뒷부분의 일기는 그때의 소년들이 이어 적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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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채소와 마구 볶은 후, 던지듯 식탁에 내려놓은 허접스러운 소시지를 허겁지겁 먹고 있는 소년들. 바로 옆 테이블에서는 마띠유 선생이 어린 뻬삐노를 곁에 앉혀두고 싸구려 와인을 곁들이고 있다.


모든 인생은 귀하다. 나의 인생 한 구간에도, 모조리 한데 섞어 넣은 교실에서도, 학생들 하나 하나가 유일한 맛과 색을 잃지 않기를 지켜주셨던 선생님이 계셨다. 그 기억이 얼마나 길게 그들의 앞날을 비추어줄지 모르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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