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우는 침묵에 익숙한 일곱 살 아이다. 엄마는 젊음에도 불구하고 미간 가득 짜증과 기미다. 열여덟에 가출해 상우를 낳고 형편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친정에 아이를 맡기러 가는 길이니 가출 후 처음 친정 나들이 모양새가 딱하다.
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엄마는 상우의 자잘한 질문에 대답하기 버겁다. 엄마가 제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어김없이 확인하고 상우는 엄마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이다. 시골 외할머니 집에 상우를 맡기러 가는 엄마와 불만 가득한 아들은 버스에서 내려서 뿌연 먼지 가득한 길에서 발로 차고 등짝을 내려치며 무거운 현재를 산다. 어릴 때 이곳에서 달아난 사람을 혹 누가 알아볼까 비좁은 시골 버스에서 선글라스를 벗지 못하는 엄마는 아들을 맡기고서 어서 이곳을 다시 떠날 생각밖에 없어 보인다.
상우는 그렇게 언어와 떨어져 있다. 더 큰 문제는 말 못 하는 외할머니 집에서 아예 언어가 없는 낯선 세계에 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엄마는 며칠간 아이를 안심시킬 따스한 말이나 포옹 대신, 스팸, 과자, 청량음료와 게임기를 건네고, 오랜만에 만난 친정 엄마의 애달픈 몸짓을 뿌리친 채 떠난다. 엄마는 자신의 어머니와도 아들과도 대화할 수 없다.
침묵에 익숙한 상우지만, 다른 침묵에 적응하기란 또 다른 스트레스다. 마치 처음 외국에 살아야 할 때처럼, 상우가 마주한 말 못하는 외할머니의 침묵은 이제까지의 침묵과는 다른 것이다. 상대가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상우는 할머니가 말은 못 하지만 들을 수 있다는 상황을 제 방어의 수단으로 철저히 이용하며 불만을 해소하기로 한다.
눈에 보이는 곳마다 병신이라 낙서를 하고, 수시로 할머니 귓가에 욕설을 쏟아붓는다. 고통을 주는데 상대가 고통스러워하지 않으니 상우는 더욱 강도를 높인다. 할머니에게 소중해 보이는 몇 안 되는 물건을 부수거나 숨기고, 익숙하지 않은 각종 소음으로 고문하는 어린 외손자에게 할머니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꼭 한번, 가슴을 둥글게 쓸며 미안하다고 한다. 이유 없는 사랑을 모르는 상우는 할머니의 사랑을 견딜 수 없다.
상우와 할머니의 접점은 닭고기 장면이다. 프라이드치킨 사진이 있는 책받침을 보여주며 먹고 싶다는 외손자를 위해, 할머니는 고이 말린 나물을 보자기에 싸들고 길을 나선다. 후드득 비가 내리고, 오지 않는 할머니를 기다리다 잠든 외손자에게 이불을 덮어 재우고 나서, 할머니는 칼을 갈아 닭 목을 따고 정성스레 닭을 고아 상을 차려준다.
프라이드치킨 대신 희멀건 닭백숙을 마주한 상우는 ‘언제 물에 빠뜨리랬어?’ 다리를 뻗고 울음을 터뜨리고, 할머니는 우는 손자의 벌린 입에 닭다리를 넣어주려 세월과 노동에 거칠고 따가운 손으로 애를 쓴다.
한 밤중 허기에 허겁지겁 닭다리를 해치운 상우의 눈에 그제야 들어온 것은 빗속에서 나물을 팔고 닭을 사들고 먼 길을 구부정히 걸어온 할머니의 감기 몸살과 오한이다. 알짜배기 다리를 다 먹어 버렸으니 남은 것은 앙상한 몸통뿐이지만, 서툴게 이리저리 할머니 밥상을 차려낸 승우는 처음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경험한다. 그것이 기쁨이라는 것도 처음 체험한다.
외할머니는 상우가 살아온 삶 정 반대의 것들을 이고 지고 있다. 사랑이다. 상우는 처음 이해할 수 없는 정반대의 것과 공존하는 시간이 죽을 듯이 싫다. 그래서 발길질이나 욕지거리로 자신을 방어하고, 철저히 게임기와 롤러블레이드의 소음으로 자신의 세계가 우월하다 과시한다.
상우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것들은 사물이다. 그래서 상우가 할머니를 거부하는 방법은 할머니가 가진 몇 개의 사물을 빼앗거나 버리거나 숨기는 것이다. 그 물건이 할머니의 삶에서 강력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사라진 비녀 대신 수저로 머리 쪽을 지고, 사라진 헤진 고무신 대신 더 헤진 다른 것을 신는다. 승우가 살아온 물건의 삶과 할머니가 살아온 마음의 삶은 경쟁할 수 없다.
영화에서 상우가 할머니처럼 수화를 사용하는 장면은 두 번이다. 미친 소 사건으로 동네 형한테 거짓말을 한 것이 발각되었을 때, 부끄러움과 미안함과 당혹감이 뒤섞인 말 할 수 없는 감정에서 상우는 할머니처럼 가슴을 둥글게 쓸며 달아난다.
그리고 마지막, 할머니와 이별하던 버스에서 미처 할머니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다가 버스가 떠나고서야 뒷자리 창에 바짝 달라붙어 붙어 가슴을 둥글게 쓸어 보인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게 된 사람은 이별해도 헤어지지 않는다. 상우와 할머니는 연결되어 있다. 손자를 보내고 집으로 들어가는 할머니 걸음걸이가 당당한 까닭이다.
늘 혼자였던 두 사람, 이제 그리운 것을 가졌다. 그해 여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