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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트폴리오 Dec 07. 2022

사부작대며 꾸준히, 롱런하는 창작자의 비밀

Gigondas 와이너리 기념 전시회 by lilosome

18만 창작자 회원이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네트워크 '노트폴리오'는 매주 발행되는 뉴스레터를 통해 노트폴리오 픽으로 선정된 작업의 창작 과정의 인터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약 레터를 구독하고 싶으시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사부작대며 꾸준히, 롱런하는 창작자의 비밀

Gigondas 와이너리 조합 기념 전시회 (France) 2022’ by lilosome  


‘와인’ 그리고 ‘프랑스’를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따뜻한 햇살 아래 영글어가는 아름다운 포도와 초록빛 낭만적인 포도밭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늘 소개하는 작업은 바로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계신 일러스트레이터 ‘lilosome(릴오섬)’님의 와이너리 전시를 위한 수채 영상 작업입니다.

창작자로서 열정을 잃지 않으려 꾸준히 노력하고 계신 릴오섬 작가님의 이야기와 함께 수채화와 모션 그래픽을 조합해 생생히 뻗어나가는 포도 줄기를 영상에 담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작업에 대한 비하인드 이야기도 함께 확인해보세요.



섬과 섬을 연결하는, 릴오섬

안녕하세요. 수채화 일러스트레이터 릴오섬 입니다. 올해로 11년째 프랑스에서 살며 창작자로 활동하고 있어요. 릴(L’île)은 프랑스어로 섬이라는 뜻입니다. 릴오섬은 섬과 섬이 이어져 있다는 의미예요. 제가 어린 시절 프랑스로 공부하러 떠날 때 어머니가 하신 말에서 영감을 얻은 이름입니다.



그림 재활에 성공한 창작자

저는 저 스스로 ‘그림 재활에 성공한 창작자’라고 말하고 싶어요. 성공했다는 말의 의미가 ‘잘나가는 창작자’라는 뜻이 아니고 ‘창작을 다시 좋아하게 된 창작자’라는 뜻입니다.

학업 중, 그리고 졸업 후 영상 작업을 하며 일하던 기간까지 총 7년을 컴퓨터와 태블릿 앞에서 보냈어요. 어느 날 오랜만에 종이와 색연필을 들었는데 그리는 행위가 너무나 두려운 거예요. 지웠다 반복하면서 굉장히 좌절하던 중 희극인 박지선 씨의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되었어요.

진로를 고민하던 시절의 박지선 씨가 무료하게 창밖을 보다가 문득 ‘내가 가장 즐거웠던 시절이 언제였지’라고 스스로 묻게 되었고, 그 시기가 바로 여고 시절 친구들을 웃기던 시절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대요. 그 후 이전의 모든 걸 뒤로 하고 희극인이 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요.


물로 그린 세상 by lilosome

물로 그린 세상 작업 바로가기


그 이야기를 듣고 저 또한 학창 시절 좋아하던 수채화를 다시 들었습니다. 다시 창작에 대한 애정을 되찾기 위해서요. 그리고 ‘110 그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해 100일 동안 하루에 한 장씩 그림을 그렸어요. 처음엔 사진을 보며, 그다음에는 용기를 내어서 밖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그렇게 일상을 수집하는 어반 스케치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관찰의 순간에 몰입하는 ‘어반 스케치’

창작자로서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영감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순간에 몰입하고 기록한 그 모든 게 모여져 나만의 감성을 만들어내죠. 그런 저에게 어반스케치는 가장 좋은 기록의 방법이자 순간을 100% 사용해 몰입하게 하는 작업입니다.

어반스케치의 매력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계’인 것 같아요. 저는 사실 디지털 작업의 무한한 가능성 속에 도리어 헤매게 되었었거든요. 멋진 그림을 그리고도 ‘이게 끝인가?’하고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어요. 무한의 선택이 준 덫 같았어요. 반면 어반스케치의 제한적 상황에 적응하는 동안 지금, 이 순간 눈앞의 풍경에 몰입해 손에 주어진 팔레트와 종이, 그리고 붓으로 그리는 법을 습득했어요. 또 실수 또한 작업의 일부라는 걸 인정하게 된 과정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릴오섬 작가님의 어반스케치 작업과 기본 도구 모음


그렇게 잃어버린 창작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어요. 이 과정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긍정적으로 변했구요. 모든 게 그림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매일매일 재미있는 순간을 볼 수 있었어요. 그 소중한 매 순간을 시각으로 표현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그 행복함을 나눌 수 있는 창작자가 되고 싶어요.

또 언젠가 프랑스의 작은 마을들을 다니면서 그렸던 어반 스케치를 모아서 여행기를 내고 싶어요. 어느새 500점에 달하더라구요. 여행기를 통해 니스나 칸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남쪽 대도시 말고 숨겨진 프랑스 시골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습니다.




목마른 자가 판 우물의 맛  


이번 작업의 배경인 ‘Gigondas(지공다스)’는 수십 개의 양조장이 있는 남프랑스 시골의 작은 도시입니다. Gigondas 와인의 공식적인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행사에 올해로 2년째 참여하게 되었어요.

제가 참여한 행사는 기획 전시로 ‘오랜 역사를 지닌 와인, 그리고 양조장의 사람들’이 주제였습니다. 전시실 한쪽에는 역대 양조주들의 사진과 과거 척박한 시절에 땅을 일궈내던 모습이 사진으로 전시될 예정이었어요. 그래서 감동적이지만 과하게 무겁지 않은 콘텐츠가 필요했습니다.  



영상 작업을 위해 제작한 수채화 소스들


첫 참여였던 작년에는 작게 수채화 한 점을 걸었던 게 전부였는데 이번 전시에선 클라이언트 측에서 좀 더 많은 수채화를 제안해주셨어요. 거기에 제가 한술 더 떠서 영상까지 만들어 보겠다고 역으로 제안했습니다. 다행히 클라이언트분들도 ‘뭔지 모르겠지만 믿어 볼게!’라며 응해주셨고, 그렇게 영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라’라는 말이 있잖아요, 이 과정을 통해 창작자로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프로모션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어요.



더 깊은 몰입을 위한 제안

사실 수채화 같은 평면화는 전시장에서 일정 시간 이상 관객의 주의를 끄는 게 쉽지 않아요. 특히 크기가 작거나 보호막 안에 들어가 있으면 관객들이 가까이에서 작업의 감동을 느끼기가 힘듭니다. 수채화는 종이 위에 투명하게 번지는 질감이 생명인데 어두운 전시실에서는 한계가 있거든요. 반면에 영상은 시청각이 더해지기에 자극이 배가 됩니다. 영상이 나오는 동안 일정 시간 몰입을 끌어낼 수도 있죠.


영상 작업 과정


영상의 키워드를 ‘생동감’으로 정하고 살아있는 식물과 그 식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역동적인 포도 덩굴 그리고 작은 곤충의 바쁘고 섬세한 움직임을 보여 주려고 했습니다. 지공다스의 양조장들은 대대손손 이어져 오는 그들만의 역사가 있거든요. 그들이 자신의 역사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처럼 저도 장인 정신으로 애니메이팅했어요.



도전하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짜릿함

결과적으로 영상을 보고 사람들이 다시 원화로 넘어와 관람하는 역주행 관람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기대한 이상으로 시너지가 좋았어요. 완성된 작업을 보고 식물이 뻗어나가는 게 마치 와인이 일생처럼 숭고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말을 들었을 때 클라이언트의 철학을 잘 담은 것 같아 기쁘고 뿌듯했습니다. 인터뷰와도 잘 어울려서 제가 원했던 그림이 나왔던 거 같습니다.


원화가 설치된 전시장의 모습


영상과 함께 원화를 전시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관객분들도 종이에 그린 그림들이 생명력을 갖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재미있어 했어요.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만남이 저에게도 마음에 들었던 시도였어요.



사부작대며 꾸준히

매일매일 넘치는 재능들 속에서 저도 모르게 비교하게 되어 움츠러들곤 해요. 그럴 때마다 친구와 자주 ‘사부작사부작하자’라는 말을 해요. 사전적인 의미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계속 가볍게 행동하는 모양’이에요. 이런 정신이 창작자로서 즐기며 롱런하는 데 중요하지 않을까요? 가끔은 완벽함에 매달리지 말고 사부작대며 꾸준하게 창작력을 관리한다면 흰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긴 글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영감이 되어주시는 모든 노트폴리오 창작자분들 모두 감사하고 함께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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