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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국수를 먹는다.
by
김용현
Jul 17. 2021
지면에 돋은 열기가 도로를 사납게 쓸어버린다.
눈은 조리개를 닫아 애써 방어하지만 후각으로 우회한 열기는 숨을 타고 혈액에 녹아 폐를 부풀린다.
팽창한
공기 속에 산소의 밀도는 옅다.
뇌는 생존을 명령하고 숨과
숨 사이 가녀린 산소를 더듬는다.
분식집에 들어선다.
벽에 걸려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가 용맹스럽다.
회전하며
삐걱이는 소리는 장수의 사자후다.
십만 더위의 적병을 장판
교 장비처럼
혼자 대적하고 있다.
나는 여름에 콩국수를 즐겨 먹는다.
딱히
먹는 방법은 없지만
콩국물부터 들이킨다.
날것의 콩이 갈려 물과
면이 섞인 그릇을
들이키면 고소함과 청량감이 흡수된다.
나는 여름에
설탕 친 콩국수를 좋아한다.
구겨진 얼굴은 단맛이 공급된 뇌의 반응으로 펴진다.
단골 분식집에선 면으로 보리를 쓴다.
한겨울 논바닥에 뿌릴내려 냉기를 받아먹고 자란 보리가 잔뜩 늘어지고 처진 위장에 번진 화재를 진압하고 순하게 소화된다.
아버지는 80년도
광주고속버스 기사였다.
버스 안에
서 광주사태를 겪었고 88 올림픽도 맞았다.
해외여행 자율화 빗장이
풀리기 전 최고의 교통수단은 고속버스였다. 기사들의 운전 기술은 정밀했고 실력은 코너링에서
결
집한다.
급코너를
돌 때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상태에서 바퀴는 바깥 라인에 정확히 밀착해서 돌아야 승객의 머리가 난동하지 않고 토하는 사태를 넘길 수 있었다.
안내양의 용모는 반듯했고 기사의 복장은
흰 장갑과 모자로 엄정했다.
땀이 많은 아버지는 머리 피부병이 심했다.
당시 엄격한 서비스 규율로 모자를
벗지 못했다.
머리에서
들끓는 열과 땀을 모자가 가로막았다. 경부선을 두 번 왕복하는 10시간 동안
남자의 머리는 용광로로
들끓었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두 번 집에 왔고 사흘을 차고지에 딸린 숙소에서 잤다.
아버지가
오는 날은 어머니가 콩국수를 하셨다.
마루에 상을 두고 부자간에 콩국물을 들이켰다.
아버지
입술 주위에 묻은 지친 콩물을 보며
어머니와 내가 웃었고 내 입술에 묻은 여린 콩물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웃었다. 아버지가 쓰다듬어 주었고 어머니가 키스해주었다.
여름은 따뜻했고 가난은
아무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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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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