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자르고 바다에 온다.

by 김용현

머리를 자르고 바다에 온다.
바람이 사납다.
바람에 밀린 파도는 밀려온 파도와 닿는다.
오후에 걸린 8월의 태양은 찌르고 달군다.
어둠을 밀어낸 빛은 공간을 메우고 수평선에서 명멸한다. 시간은 시간 속에 묻히며 빛은 시간속에 확장되고 종극에 어둠을 당긴다.
사람은 바다를 향하고 바다는 사람을 향해 달려든다. 뭍과 물의 경계에서 나아감과 물러남이 교차하고 사람은 그곳에 멈춘다.
오늘 제법 걸었고
점심에 선짓국에 막걸리를 먹었다.
탁하고 걸쭉한 기운이 창자에 닿는다.
안주삼아 급히 넘긴 선짓국이 목구멍에서 비릿하다.

소금 간을 덜했지만 시간을 버틴 음식답게 건더기가 부드럽다.
식당 주방에서 큰 솥으로 선짓국이 끓는다.
내게 준 선짓국의 역사는 먼저 먹은 사람의 것이고 나 다음 먹을 사람의 그것이다.
우린 같은 솥에서 먹었지만 다르게 씹고 삼킨다.
식당 안은 같이 먹고 혼자 먹는다.
어제 처음 만난 연인과 밤을 새운 청춘은 정신 나간 표정으로 마주 앉아 불편한 듯 정든 시선을 외면하며 같이 먹고.
나처럼 혼자 앉아 먹는 60을 넘긴 젊은 노인은 조루증처럼 무뎌진 혀의 감각을 깨우려 고춧가루를 들이부으며 혼자 먹는다.
혼자 먹는 사람은 벽을 두고 먹고 빈 의자를 두고 먹는다. 단지 먹기 위해 먹는 것의 고단함을 알기에 실체 앞에 허상을 두고 먹는다.
나는 벽을 두고 먹는다.
내 앞에 걸어와 앉은 벽의 실체를 사람인 듯 허상으로,
빈 의자를 마주한 저 노인네도 허상의 누군가를 마주하며 먹는다.
다시 바람이 부는 바다로 나온다.
잘려 짧아진 머리가 시립고 상쾌하다.
해는 벌써 바다와 내륙을 넘어섰다.

이전 15화부산 바다. 잘 가 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