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피질의 재앙이네요. 스무 살 서른 그런 시간 개념을 담당하는 부위가 두뇌 바깥 부분인 신피질입니다. 고양이는 인간과 다르게 신피질이 없죠. 그래서 매일 똑같은 사료를 먹고 똑같은 일상을 보내도 지루해 하지 않아요. 그 친구한테 시간이라는 건 현재밖에 없는 거니까."
"스무 살이니까, 서른이라서, 곧 마흔인데. 시간이라는 걸 분초로 나눠서 자신을 가두는 종족은 지구상에 인간 밖에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나열하는 약점을 공략해서 돈을 쓰고 감정을 쓰게 만들죠. 그게 인간이 진화의 대가로 얻은 신피질의 재앙이에요. 서른도 마흔도 고양이에겐 똑같은 오늘일 뿐입니다."
지난해 방송된 tvN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첫 방송 분량에 나왔던 대사입니다. 서른 살이 되어서야 막내 작가가 된 정소민이 “스무 살도 아니고 나이 서른에 이게 뭐하는 짓인지”라고 넋두리를 늘어놓자, 이민기가 한 말이죠. 극중 이민기는 고양이 집사이기도 합니다.
이 대사가 시간의 흐름에 대해 탄식하고, 특정한 나이대가 되면 사회적으로 어떤 것을 이뤄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나 봅니다. 어떤 분이 여쭤보시더군요. 정말 고양이는 신피질이 없어서 시간의 개념이 없느냐구요.
고양이가 주변의 상황과 시간의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다만 여러 가지 정황을 통해 어떤 동물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왜 그랬을지에 대한 연구와 추론이 가능할 따름이죠. (동물 중에서도 고양이 생각이란 더더욱 알기 어렵습니다.)
알 수 없는 부분은 제외하고, 신피질이 존재하는가 여부에 대한 답변만 말씀드리자면, 안타깝게도 드라마 작가님이 뭔가 잘못 들으신 모양입니다. 고양이 역시 신피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피질(Neocortex)는 포유동물의 대뇌 가운데 바깥쪽에 위치해 있으며, 6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뇌의 기능 가운데서도 가장 복잡한 능력인 지각, 인식, 운동/공간 감각 및 언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종별로 신피질의 크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드라마의 언급처럼 일반적으로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신피질이 커졌다고 보는 것이 생물학계의 정설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신피질이 발달한 인간의 경우 전체 뇌 가운데 76%가 신피질로 구성되어 있을 정도죠.
즉, 정말로 신피질이 아예 없는 동물이라면 인간과는 달리 시간감각이 거의 없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양이 역시 엄연히 대뇌의 신피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고양이가 신피질이 없어서 시간감각이 없다면, 시간은 물론이고 다른 지각이나 운동감각 역시 없는 것이 정상(?)이겠지요.
드라마 속의 대사는 최소한 과학적으로는 틀렸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고양이에게 배울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고양이들은 신피질이 없어서 오늘을 사는 게 아니라, 신피질이 있어도 단지 오늘을 즐겁게 사는 걸지도 모르니까요! 이렇게 매력적인 고양이와 오늘도 행복한 반려 생활하세요~^^
※ 이글은 양이삭 수의사(yes973@naver.com) 님이 노트펫에 연재한 칼럼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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