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정감사장에 벵골 고양이가 등장하면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작년 9월 대전동물원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된 퓨마와 관련된 '증인'으로 세워진 것인데요.
벵골 고양이를 증인으로 출석시킨 의원은 '퓨마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사실상 동물 학대나 다름없다는 누리꾼들의 차가운 시선을 받게 되었지요.
벵골 고양이가 퓨마와 비슷하게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벵골은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야생 '삵'의 후예들입니다.
여기엔 FeLV(Feline leukemia virus, 고양이 백혈병 바이러스)와 관련한 사연이 있는데요.
벵갈이 하나의 품종으로 정착하는데 최초의 공로를 세운 사람은 윌라드 센터월(Willard Centerwall)이라는 의사였습니다.
미국인인 그는 예일 의대를 졸업하고 나중에 로마린다 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 교수이자 유전/선천성 질환 연구센터장이 됩니다.
당시 그는 삵(Asian leopard cat)이 고양잇과 동물 가운데 특이하게도 FeLV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고 연구 목적으로 집냥이(Domestic cat)와의 이종교배를 시도합니다.
물론, 윌라드의 관심사는 벵골이라는 새로운 고양이품종 그 자체라기보다는, HIV/FeLV를 비롯한 면역억제성 병원체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을 받는 인간과 고양이들 사이의 유전자 비교였습니다.
연구를 계속하던 그는 말년에 건강이 악화되자 진 밀(Jean Mill)이라는 사람에게 연구 목적으로 키우던 하이브리드들을 넘기게 되며, 그녀와 다른 몇몇 브리더들에 의해 품종 개량에 성공해 현대적 의미의 품종, '벵골'로서 널리 인정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삵의 계보를 이은 벵골 고양이들은 야생 삵처럼 FeLV에 대해 면역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안타깝지만 아닙니다. 삵과의 관련성 때문에 외국에서는 '벵골은 FeLV에 감염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기도 하지만, 삵과는 달리 벵골도 FeLV에 감염되면 임상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벵골은 데이터상 우리나라에서는 전체 고양이의 5%도 안 될 것으로 추정되는 꽤 희귀한 품종인 반면, 북미나 유럽권에서는 상당히 관심도가 높은 품종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양이 품종 중에서도 크고 아름다운 덩치를 자랑하는 메인쿤처럼요.
우리나라에 사는 벵골은 자신이 퓨마와 비슷한 입장이라고 생각할까요?
만약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채택된 벵골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 본 콘텐츠는 양이삭 수의사(yes973@naver.com)가 노트펫에 기고한 칼럼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에디터 김승연 <ksy616@inb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