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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맹 May 27. 2024

회사가 주목하지 않는 자. 워킹맘의 이름

오피스게임의 단비와 같은 존재


워킹맘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오피스 게임의 좋은 덱을 만들었는가? 아님 쓸만한 캐릭터가 잘 안 보이는가? 남들은 별로 관심을 갖지 않지만 아주 유용한 캐릭터가 있다. 바로 워킹맘이다! 무슨 소리냐구? 지금부터 들여다보자. 워킹맘을 공략하면 그 스페셜 스킬은 많은 도움이 된다.


눈치를 무릅 쓰고 이런 상황이 연출될 때가 있다.


오피스 세계관은 여자의 입지가 매우 좁다. 조선의 사회풍토가 한몫한 바가 크다. 유리천장이라는 말. 당연하다. 바깥일은 남자, 집안일은 여자라는 전근대적 인식은 남성 중심의 사회를 만들었다.


오피스 세계관에서 여캐의 길은 매우 험난하다. 얼마 안 하고 곧 나간다는 인식. 남캐로 똘똘 뭉친 쌍팔년대 사고관. 이런 합병증 같은 영향으로 여캐에게는 좋은 보직이나 보상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피스 게임에서 통상 여캐의 길은 이렇다. 100명의 여캐 중 20명은 결혼과 함께 퇴사한다. 30명은 출산휴가를 전후해서 퇴사한다. 그리고 이 고비를 넘은 여캐들은 워킹맘이 된다. 여기까지 이미 절반 나갔다. 이제 남은 여캐 50명. 이 중 30명이 육아에서 고비를 맞는다. 육아휴직을 쓰고 나서 퇴사한다.


남은 최종 20명의 오피스 여캐. 이들에게 장밋빛은 없다. 한직과 저평가가 주를 이룬다. 기회는 열리지 않는다. 그렇게 알음알음 떠밀려 수년 후 10명 정도 더 퇴사한다. 정확히 퇴사당한다는 말이 더 적당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제 남은 자는 얼마 없다. 이렇게 대부분의 워킹맘들은 출산과 육아에서 게임의 고비를 맞는다. 경단녀는 이미 흔한 일이 되었다. 아예 게임 복귀를 못하기도 한다. 고성능 캐릭터의 가치가 그대로 떡락한다.


아이가 오면 그날 오피스의 분위기는 색다르게 바뀐다.


물론 모든 여캐가 다 워킹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워킹맘은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결혼, 출산, 직장을 갖추면 워킹맘이 된다. 워킹맘으로 10년 이상 버티는 것은 매우 대단한 일이다. 이미 그 자체로 수많은 여캐 중 10% 안에 들었기 때문이다.


오피스 세계관에서 워킹맘의 역사는 사실 길지 않다. 2000년대 들어 워킹맘이 크게 증가한다. 여러 사회학자들은 이를 여성 인권 신장. 여성들의 자기 각성으로 해석한다. 근데 그런 워킹맘들은 일부 전문직 말고 많지 않다. 사실 대부분의 워킹맘들은 떠밀리 듯 사회에 나온 것이다. 예전에는 외벌이로 되던 것이 이제는 맞벌이 아니면 자본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언제 짤릴지 모른다. 언제 거지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높아졌다.


아이는 어디서든 왕 그 자체. 모두가 떠 받들어 준다.


젊은 날 이들의 삶은 아름다웠다. 한 떨기 꽃과 같았다. 중년이 되면 우아하고 기품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생활 전선에 내몰린 이들의 현실은 달랐다. 가녀린 소녀의 모습은 사라졌다. 점점 멀어져만 간다. 아니 정확히는 마음속 한켠에 고이 간직했다.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실사구시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어여쁜 옷 필요 없다. 편한 게 장땡이다. 구두 굽높이는 낮아진다. 높고 도도하던 콧대가 꺾인다. 아이를 위해 여기저기 몸을 굽신거린다. 마트에서 1+1에 눈이 돌아간다. 집었던 물건 내려놓기를 반복한다. 백화점은 내가 가는 곳이 아니다. 각종 고지서에 한숨 쉬는 일이 많아진다. 화장은 옅어지고 낯짝이 두꺼워진다.


분위기를 먹던 이들이 살기 위해 먹기 시작했다. 똥기저귀 따위 맨손으로 간단히 치워낸다. 묻어도 개의치 않는다. 새끼 똥은 냄새도 안 난다. 점점 정보를 얻는 곳은 맘카페가 되어간다. 상사는 아이의 선생님이다. 내 이름이 없어진다. 어느 순간 은이맘, 빈이맘으로 불리고 있다.


괜찮다. 내가 지워지더라도 아이가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이제는 이 아이가 내 원동력이다. 삶의 이유다. 아이가 웃어주면 피곤이 사라진다. 새끼가 잘 먹으면 배가 부르다. 그래서 억척스럽게 독기를 품고 버텨낸다. 대부분 워킹맘들은 이런 고난의 행군으로 잔병치레가 매우 많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자세히 보면 성한 데가 없다.


워킹맘의 주 에너지원은 다른 캐릭터들과 다르다.


그럼에도 월요일 아침. 아이 등원시키고 꿋꿋이 출근하는 그들의 이름은 워킹맘이다. 아이는 엄마가 일하면 싫어한다고? 아니다. 당당한 커리어우먼으로 보여서 오히려 자랑하고 다닌다. 반대로 모든 워킹맘은 늘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고 있다.


이들은 오피스 세계관 주 소외 계층이다. 밥 먹듯한 야근도 못한다. 회사에 눈치 보인다. 집에 가면 육아가 시작된다. 주말이 되면 밀린 집안일과의 전쟁이다.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워킹맘의 퇴근길 걸음걸이 속도는 정확히 출근길 두 배다.


회사는 워킹맘을 별로 중용하지 않는다. 갈아 넣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 그만둘지 모르기 때문이다.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워킹맘은 과감함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보통 한직에 배치한다. 기회를 주지 않는다. 보상을 하지 않는다.


워킹맘이 맨날 술 먹고 다니는 거 봤는가? 주말마다 골프 쳐대러 나가는가? 상사 야근하면 같이 야근하나? 아니다. 그들의 삶은 보통 일과 가정이 분리되어 있는 게 기본이다. 시간을 마구 찍어내기 어렵다. 퇴근 후에는 집안일이 산더미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나들이 가야지 무슨 골프냐? 그렇기에 회사는 워킹맘에게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워킹맘도 회사 지위에 그닥 관심을 갖지 않는다. 회사는 단지 일가정 양립 문화 이런거에 이벤트성으로 이용할 뿐이다.


아들! 엄마 오늘 야근이라서 늦어. 미안해..


워킹맘은 많은 신경이 분산되는 구조다. 업무 도중 아이에게 톡이나 전화도 빠뜨리지 않는다.

"아들! 밥 굶지 말고 편의점 가서 뭐라도 사 먹어! 엄마 빨리 하고 갈께!"


워킹맘은 아이에게 거짓말을 잘한다. 오늘 야근각임을 알면서도 일찍 간다고 거짓말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전화해서 일찍 가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또 한바탕 싸워댄다. 남몰래 눈물을 삼킨다. 결국 지친 몸을 이끌고 아이의 자는 모습을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다 잠이 든다. 아침이 되면 아이와 또 약속한다. "엄마 어제는 미안! 오늘은 꼭 일찍 올께!"


워킹맘의 보호 본능과 마더십이 솟구치는 순간이 있다.


리더십, 동기부여, 성공 등 다양한 이론들이 오피스 세계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제대로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워킹맘에게만 있는 것. 바로 마더십이다. 험난한 고난의 삶과 각종 차별. 그 속에서 짙게 배인 내면의 외로움이 이들에게 만들어 준 강력한 무기다.


오피스 게임에는 다양한 캐릭터가 존재한다. 능력치도 제각각이다. 그중 워킹맘은 인내심 끝판왕이다. 잔정이 많다. 자존심? 그런 거 없다. 엄마의 마음으로 다 포용 가능하다. 딱 하나만 주의하면 된다. 내 새끼 건드는 건 절대 참지 않는다. 다른 자존심은 다 꺾여주더라도 반드시 하나만은 지킨다.


야! 너 깡패야? 누굴 건드려! 니가 사람 새끼니?


워킹맘과 친해지면 크게 한방은 아니더라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잔정이 많아 좋은 대화 상대가 되어준다. 작은 것도 소소하게 잘 챙겨준다. 동료들과 싸우면 푸근한 엄마의 마음으로 중재도 잘해준다. 나름의 혜안이 있다. 전하기 힘든 말도 아줌마답게 대신 나서 요리조리 잘 돌려 전해준다.


워킹맘은 생각보다 융통성이 탁월하다. 다만 내 새끼를 건들면 터진다. 오피스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워킹맘과 절친이거나 새끼 같은 후배를 건들면 그 진가를 볼 수 있다. 못 믿겠으면 한번 건드려 봐라!


너 일루 안 와? 어딜 도망가? 오늘 아주 끝장을 보자!


워킹맘의 푸근한 미소가 사라진다. 잠시 눈을 감는다. 그 눈이 떠졌을 때는 쌍심지를 치켜 세운다. 그렇다. 워킹맘의 전투 모드다. 그들의 필살기. 논리 따위 안 통하는 분노의 따다다다를 시전 한다.


"일을 막 떠밀어도 말이야! 정도껏 해야지. 애들이 모른다고 그런 식으로 막 떠미는 거에요? 깡패야? 규칙도 없어요? 여기 무슨 좋소야? 선 너무 넘어대시네! 우리 시어머니도 이렇겐 안 해! 가서 제가 안된다고 했다 그래요. 아니다. 그럴꺼 없다. 그쪽 팀장님 자리 대세요! 내가 가서 한바탕 해 버릴꺼니깐!"


분노의 워킹맘! 결국 유명한 회사 일진도 한방에 패대기쳐 버린다. 눈 착하게 뜨라며. 우아.. 겁나 쎄다..


제가 도와 드릴께요. 오늘 일찍 퇴근하세요!


워킹맘의 공략은 어렵지 않다. 잘 꼬셔두면 매우 유용할 것이다. 첫째는 아이에게 관심을 표해주는 것이다. 자그마한 아이 선물이나 아이의 안부 묻기 정도로도 워킹맘은 마음이 열린다. 무조건 보답한다.


둘째는 그들과 일할 때 이들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많은 워킹맘들이 이미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한직에서 오는 설움. 오지 않는 기회. 점점 밀려나는 것 같은 능력치다. 그들의 능력을 발견해 준다. 여러 일을 상의한다. 그러면 비로소 주어진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해낸다. 또한 커리어우먼으로서 진정한 뿌듯함도 느낀다. 그렇다. 자기애가 생겨난다.


마지막으로 워킹맘 자신을 돋보이게 해 주면 여기서 모든 게 다 터진다. 소소한 화장품, 편리한 충전기, 이뿐 옷 추천 이 정도에도 진정한 환희가 솟구친다. 아마도 진정 감동할 것이다. 워킹맘은 늘 남만 챙겨줬지 자신을 챙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들! 엄마 지금 퇴근해! 맛있는거 해 줄께!


이제 알았다면 지금부터는 워킹맘을 다시 보도록 하자.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오피스 게임의 단비와 같은 자들이다.


내 오피스 게임 덱에 괜찮은 워킹맘 한둘쯤 있다면, 게임에 소소한 재미를 더해 줄 것이다.


P.S. 평소 온화한 마더십의 표상 박과장님. 그렇게 사내 일진 전략팀을 탈탈 털어버리고 위기의 초맹을 구해냈다. 그리고 할 일 없는 초맹은 박과장님의 일을 도와주고 칼퇴시켜 줬다. 오늘은 가서 아이와 놀아주라고. 어깨너머 해맑은 전화 소리가 들린다.

"아들! 엄마 집에 가! 떡볶이 해줄께! 사랑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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