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지나쳤다면 다시 돌아보자.
텍스트가 아니라 컨텍스트를 읽어라!
Q. 회의 시간 중 누군가 의견을 물어봤다. 속내에 가장 가까운 것은?
"이 안건. 제 의견은 이런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1) 너도 동의해라!
(2) 혹시 더 좋은 생각 없어?
(3) 너의 의견을 참고하도록 할께.
(4) 너 생각없지?
정답은 1번이다. 이제 이 정도는 쉽지? 저건 동의를 구걸하는 표현이다. 오피스 게임 중 사냥을 하며 가장 난감한 경우는 누가 의견을 구하는 경우다. 의견을 먼저 말했다가 다양한 어택을 받기 때문이다.
"그럼 니가 해!"
"야! 생각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쟤가 이렇게 하랬는데요?"
공격의 종류는 다양하다. 아마 다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난 아닌데? 하는 거기 너! 그래! 너! 지난 주에 의견 말했다가 일 옴팡 뒤집어 쓴거 다 안다.
반대로 상대의 의견이나 생각을 물어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여기서 문제는 순수하게 의견을 물어보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대부분은 물어보는 사람은 숨겨진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의도를 말해주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알아내느냐? 관심법을 구사해야 한다. 한마디 들을 때 설렁설렁 듣지 말고 잘 관찰하자. 저들이 원하는 걸 쉽게 알아낼 수 있다. 그리고 쉽게 역공을 날릴 수 있다.
1. 동의를 구하는 표현
"제 의견은 이런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 너도 동의해라!
본인 생각이나 의견을 먼저 밝히고 물어보는 경우에는 상대에게 동의를 구하는 거다. 한명보다는 여러 명의 입김은 크게 먹히는 법이다. 그래서 지금 나한테 표를 얻어보겠다는 심산이다. 만약 친한 사람이거나 빚이 있는 상대라면 한번 도와주는 셈 치고, 동의와 호응을 찰지게 해 줘도 된다.
그러나 일을 떠밀려고 '그러니 너가 해 줘'를 시전할 수도 있다. 그럴싸한 이유를 들어서 바로 방어해 내야 한다. 이런 경우는 보통 상사가 불러서 말할 때다. 나이스하게 동의를 구함과 동시에 나한테 일을 전가하려는 수작이다. 단전에 기를 모으고 핑계거리와 딜할 만한 걸 생각하며 기브 앤 테이크 받으면 된다.
"아! 그럼 초맹이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네? 잘 됐다. 잘 이해하고 있으니 이거 한번 해 주자!"
"아웅.. 다 할 수는 있을래나? 항상 시간이 문제거든여. 이거 한번 해드리면 저 모해 주실꺼에영? 헤헤."
2. 몰라서 물어보는 표현
"어떻게 처리하는게 나을지 고민 중인데 생각이 어떠세요?" = 좀 알려줘 봐. 지금 털릴 각이다.
이 경우는 뭐 좀 상의하자고 대화를 시작한다. 핵심은 본인의 의견을 밝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르는데 물어보기가 좀 그럼에도 자신의 무식을 탄로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업무 중간에 이런 얘기를 할 때는, 어디선가 막혔거나 모르는 경우다. 그래서 알만한 사람에게 물어보는 거다. 의견을 참고하고 싶다. 어떻게 풀어갈지 생각을 듣고 싶다. 이렇게 돌려 말하지만, 결국 지가 모른다는 소리다.
여기서 오피서들은 업무 지식을 총 동원해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 대답해 주는 실수를 많이 범한다. 저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의 특징은 똑같다. 대답을 듣고 나면 자기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똑같다고 할 것이다. 약아빠진 것들. 저런 유형의 질문을 받았을 때, 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반드시 역으로 먼저 물어보자. 모른다는 밑천이 금방 탄로날 것이다.
자. 여기까지 파악되었다면 이제 칼자루는 내 손에 있는 셈이다. 살려줄지 모른 척할지는 상대에 따라 알아서 하면 된다.
3. 총대를 매게 하는 표현
"이런 사안이 있는데 의견을 참고하고 싶어요." = 좀 알려줘 봐!
몰라서 묻는 표현과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대상과 뉘앙스가 다르다. 보통 다른 부서와 미팅할 때 많이 나온다. 생각을 물어보는 것은 똑같다. 다만 차이가 있다. 몰라서 물어볼 때는 대체로 업무와 관련된 모범답안이 있는 경우다. 반면 이 표현은 어떤 사안을 결정해야 하거나 정답이 없는 경우에 쓰인다.
자기도 헷갈리기 때문에 확신이 없는 것이다. 확신을 얻고 싶어 찾아온 거다. 이건 대답을 잘 해야 한다. 하기 따라 상대를 맥일 수도 있고, 내가 먹힐 수도 있다. 잘못 대답했다가 덤탱이 쓰기 딱 좋다.
"쟤가 이렇게 하랬어요."
"니 얘기 들었다가 망했잖아."
이렇게 책임전가로 독박 씌우기용이다. 자칫 위기상황이 올 수 있다. 질문자의 생각과 의견을 역으로 물어보자. 이건 그냥 물어보는거다. 넌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생각이 옳다 틀렸다 하지 마라. 제3자 화법으로 회피하는 스킬을 발동하자.
"생각하고 계신 방법도 가능성 있어 보여요. 제가 잘은 모르겠지만 그 부서에서 미래지향성과 현실타당성의 가능성을 열고 주도면밀하게 검토하여 실행한다면 좋은 결과 있으실 겁니다. 자 화이팅!"
(그니깐 니가 알아서 잘 하세요!")
4. 형식적으로 물어보는 표현
"이 안건에 대한 생각이나 의견을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 이미 답은 정해져 있어.
이 경우 한 명에게 물어보기보다는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사내 정책, 제도, 서비스 개선 의견을 받는 건 거의 대부분 그렇다. 직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 유용한 의견을 반영하겠다. 이게 주 목적이다.
근데 현실에서는 실효성이 없다. 이미 답을 정해놓고 물어보기 때문이다. 나온 의견들 중 입맛에 맞는 것들을 고른다.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반영했다. 이렇게 보고하기 위해서다. 그렇다. 보고를 위한 의견 취합 함정이다. 그렇다보니 이런 자리에서 여러 의견들을 줬는데도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의견을 안 들어보고 뭘 하면 불만들이 많아진다. 이를 방지하려고 형식적으로 묻는 거다. 여기 가장 잘 낚이는 사람들은 신입사원이다. 너무 열 올리거 없다. 에너지 낭비할 거 없다. 그냥 침묵으로 일관하는게 가장 속 편하다. 왜냐구? 어차피 안 된다니까!
5. 음모론적인 의견 묻기 표현
"충치가 하나 있는데 말이야. 뽑는게 좋겠어? 치료하는게 좋겠어?" = 내 생각을 맞춰 봐!
마지막으로 권모술수를 구사하는 경우다. 가장 난이도가 높다. 보통 저런 표현은 임원들이 쓴다. 직설보다는 적절한 비유와 은유를 내뿜는다. 그러면서 의견을 묻는다. 당하는 사람은 팀장이다. 임원들은 천한 아랫것들에게 직접 의견을 잘 안 물으니까.
직설화법을 구사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빠져나갈 구멍부터 만들겠다는 심산이다. 답변에 따라 자신이 빠져나감과 동시에 팀장을 평가하게 된다.
여기서 팀장들의 대응 방법은 다양하다. 근데 잘 대응해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눈치 없는 팀장(0점) : 어디 충치 있으세요? 병원 가셔야 되겠는데요.
행동파 팀장(50점) : 쇠뿔도 단김에 빼야죠. 어떤 충치입니까? 제가 전무님 고민을 시원하게 날려 드리겠습니다!
신중파 팀장(70점) : 내용을 자세히 말씀 주시면 방안을 고민해 보겠습니다!
모두 정답이 아니다. 임원은 대충 말해도 그걸 알아주기 바란다. 그래서 직설을 요구하거나 눈치가 없으면 곧 팀장에서 교체 당하게 된다. 반대로 딱보고 너무 척척 잘 알아줘도 경계를 한다.
저 경우는 지금 둘 중 하나다.
1. 밑에 데리고 있는 팀장 중 한명을 날리고, 그 자리에 지금 부른 팀장을 앉히고 싶다.
2. 지금 부른 팀장을 날려야 되나 고민 중인데, 어떤 뽄새인지 테스트 해 보고 싶다.
이 둘 중 하나를 재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게 아니면 바쁜 사람 불러다 풍치고 충치고 개소리를 시전할 이유가 절대 없다. 당황하지 말고 이 임원의 최근 행보만 잠시 빨리 떠올려 보자. 그리고 수작질 하지 말란 답을 똑같이 형식으로 받아치면 된다.
"그 충치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오래되었는지 어느 부위인지도 중요하죠. 너무 오래되었다면 다른데 안 좋은 영향을 미치니 뽑아야 할 것이고, 얼마 안되었다면 요새 인플란트 가격도 높은데 한 몇 년은 치료하며 버티는 게 더 좋습니다. 잘못 뽑았다가 이에 바람이라도 들어가면 안되지 않습니까? 버티는 동안 다른 치료법이 나오기도 합니다."
의견. 모두 참고하려고 물어본다고 한다. 대체 뭐가 참고인데? 회사에서 생각이나 의견을 순수하게 묻는 경우는 없다. 낚이지 말자. 답하기 전에 뭘 원하는 것인지부터 파악하고 답해도 늦지 않는다.
오피스 게임은 여기저기 곳곳이 다 함정이다.
P.S. 음.. 여러분들 생각이나 의견은 어떠세요?
뭐해? 자! 너도 동의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