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에 대처하는 현명한 자세 Part 2
목줄은 같이 잡고 있는 것이다.
해고 퀘스트는 참으로 잔인하다. 이 퀘스트를 마주할 때 비로소 집단의 무서움을 알 수 있다. 조직폭력배가 따로 없다. 많은 오피서들이 해고 퀘스트 앞에 무기력해진다. 의외로 가장 쉽게 당하는 사람은 바로 팀장급 관리자들이다.
그러나 초맹의 오피스 게임 독자들은 현명하다. 이제 이 정도로는 멘탈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퀘스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인다.
회사가 해고를 들이미는 카드
HR이 제일 좋아하는 밀어내기 카드는 자발적 퇴사다. 알아서 나가주는데 이만큼 땡큐가 없다. 그다음은 권고사직이다. 그다음 부서 이동이다. 그다음은 명예퇴직. 그다음은 대기발령이고, 마지막이 해고 강행이다. 말만 다를 뿐, 결국 나가라는 건 똑같다. 일단 버티기로 했다면 저 퀘스트 순서를 차례대로 모두 경험하게 될 것이다.
[회사의 해고 시나리오]
자발적 퇴사 유도 > 권고사직 > 이상한 부서 이동 > 권고사직 > 이상한 부서 이동 > 권고사직 > 대기 발령 > 권고사직 > 명예퇴직 > 해고 강행
주요 해고 시나리오다. 계속 빅엿을 맥이면서 틈틈이 사직을 권고한다. 이런 꾸러기 짓거리에 처음에는 버티기로 마음먹더라도 2~3단계를 거치면 다 사인한다. 말 그대로 심신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회사의 해고 법칙은 그렇다. 단기에 빨리 하고 싶지만, 장기전이 되면 그냥 시간문제라 생각한다.
사직을 처음 강요받을 때 멘탈이 대략 80% 부서지고 시작한다. 이어서 몇 번 똑같이 돌려친다. 그럼 피통은 20%, 10%, 5%, 딸피 딸랑딸랑.. 하다가 쓰러지게 되는 원리다.
회사가 사직을 권고하는 이유
사실 파이어나 권고사직이나 고놈이 고놈이다. "너 나가" 하는 거잖아. 이 둘의 차이는 굴복에 있다.
1. 권고사직 : 가스라이팅 당해서 나가기로 했어요.
2. 해고 : 저것들이 나가래는데 나가기 싫어요.
실제 마주하는 해고 상황은 대부분 권고사직이다. 바로 해고를 하지 않고 권고사직을 계속하는 이유는 리스크 방지다. 왜 계속 사직을 권고할까.. 를 잘 생각해 보자. 해고를 강행할 때 받아들여지는 수준은 회사 문 닫을 수준이거나, 횡령 같은 사고를 쳐서 크게 회사에 손실을 미쳤거나 이 정도 되어야 한다. 웬만해서 해고 요건은 그렇게 쉽게 성립하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또한 조선 다이너스티의 노동법 수준은 가히 세계적 엄지 척 급이다.
오피스 게임은 대 어메리칸 제국을 모방하지만, 지켜야 할 선은 유러피언 르네상스 왕국을 표방한다. 오피서의 밥줄을 끊었다? 우리나라 정서적으로도 상당히 심각하게 여긴다.
오죽하면 불로소득은 안 된다는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주식, 부동산 이런 거 하면 투기꾼으로 몰리는 나라 아닌가? 그래서 대부분의 오피스 밥줄 분쟁은 오피서가 이긴다.
다만 회사가 이기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분쟁에 이르기 전에 끝나기 때문이다. 보통 가스라이팅 당해 미리 싸인해서 빼박을 못하거나, 중간에 적당히 유야무야 흐지부지 돈 몇 푼에 협의돼서 끝난다.
오피서들이 대개 권고사직에서 수긍하는 이유를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1. 이렇게 계속 일해봐야 나만 힘들 거 같은데 버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2. 인간적으로 1~2개월치 월급도 챙겨주네? 아쉽지만 회사 사정도 생각하자.
3. 여기서 문제 일으키면 나중에 이직할 때 평판조회하면 불리해질 거야.
4. 드러워서 진짜. 그냥 다른데 잘 이직하면 되지.
5. 존심 상해서 이제 내가 더는 못 있겠다.
6. 다른 사람들도 계속 그랬던데 여기까진가 보다.
7. 어차피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8. 이 바닥 좁다는데, 또 어떻게 마주칠지 몰라.
회사의 밀어내기가 먹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피서들이 그냥 순순하게 당해줘서다. 애초에 승부를 보려 하지 않는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해고 퀘스트는 완성된다. 모든 오피서는 똑같이 당한다.
해고 퀘스트는 시나리오를 미리 짜 둔다. 협박할 것도 생각해 둔다. 평판조회? 전 회사에 전화해서 얘 어때요 물어보기 있기? 없기? 없다. 속지 마라. 평판조회는 그런 게 아니다.
권고사직을 때리기 전에 HR은 밀어내기 비용을 추산한다. 얘 내보내는데 얼마 들까이다. 거물이라면 말이 좀 달라지겠지만, 보통 최대 3개월 월급까지는 위로금 정도로 생각한다. 권고사직에 사인해 주더라도 최소 3개월치가 기본이라는 의미다. 실업급여는 뭐 당연한 거고.. 지들이 선심 쓰는게 아니다.
(역설적으로 권고사직에 사인해 주는데, 3개월 치 위로금도 못 받고 해 준다면 호구라는 소리 되겠다.)
근데 그것도 안 주면 좋다. "이달까지 일한 거로 쳐 줄께요. 자발적 퇴사? 콜?" 그래서 이걸 먼저 하는 것이다. 그럼 한 달치도 못 받는 거다. 회사는 배려해 주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거기서도 세이브 비용을 계산한다.
안 나가고 버티면 이제 한 달 치 위로금 플러스로 얹어주겠다. 이렇게 딜을 보고, 그다음은 권고사직으로 해주겠다. 그럼 너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어! 해주는 거다. 만약 그 말을 듣고, 그걸로 안 된다. 더 주던지 아님 더 다닐 거다. 이렇게 거절하면, 그때부터 저들에게 위선의 가면이 벗겨질 거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조건이었는지 물어볼 필요 없다. 다 이 정도였다고 할 거다. 아니다. 그때그때 다르다. 속지 말자. 저들은 너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하물며 막장까지 몰린 이상 회사의 사정을 봐줄 필요가 없다. 물론 너가 크게 밑 보이지 않았다면 말이다. 치명적인 결격 사유를 갖추지 않았다면 말이다.
대충 한 달 치 월급 받고 감사하다며 그냥 떨어져 줄 것인가? 그럼 고마워할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에게는 그냥 호구로 각인될 뿐이다. 치사하게 돈 때문에 그러기 싫다고? 그런 가식은 접자. 오피스 게임은 원래 자본주의가 목적이다. 인생을 나락 보내려는 상대에게는 잘해 줄 필요가 없다.
원래 서로 돈 가지고 치사하게 하는 게 오피스 게임이다. 나가려거든 철저하게 챙길 건 다 챙기고, 억울하거든 필사적으로 더 챙기면 된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린다면 회사도 나락 보내면 될 것 아닌가?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많다. 회사는 생각보다 허술하다.
괜찮다. 이기지 못해도 된다. 그만큼 회사도 진을 빼게 하면 되는 거다. 너를 담그려 한 회사가 앞으로 너에게 잘해 줄 가능성은 제로다. 이걸 두 글자로 '막장'이라고 한다.
한 가지만 바로 알자. 밀어내기에 당하는 결정적 이유는 회사가 철옹성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완벽하게 해고를 해내는 회사는 없다. 이것만 알면 된다.
아닌 척 하지만 사실 해고에 조급한 건 회사다. 제대로 된 한판 승부를 회사는 사실 두려워한다. 한 명 적당히 보내려다가 문제가 생기고 시끄러워지면 그다음 짤리는 건 HR이 되기 때문이다. 이 기본 원리만 명심하면 오피서들이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
P.S. 해고 퀘스트를 돌파하는 공략법은 Part 3에서 적나라하게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