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청년들을 좋아하는 이유
청년을 좋아하는 건 맞아! 싸고 쉬우니까!
최근 수년간 회사는 MZ세대에 맞추기 위해 문화적으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꼰대력을 버려야 한다. 세대 간 조화가 필요하다. MZ에 맞춰야 한다. MZ는 회사의 미래다. 직급도 없애고 수평적인 회사를 만들려고 한다. MZ의 소리를 들어주자고 계도한다.
근데 좀 이상하지 않아? MZ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우선 채용을 별로 안 한다. 신입에게 경력 쌓고 지원하라는 소리를 해댄다. 사내에서 MZ의 입지를 넓혀 주지도 않는다. 보상은 위에서 다 해 처먹는다.
회사의 미래라며? 맞아? 근데 청년들에게 왜 이렇게 박하지? 아닌가? 그래. 10번 양보해서 나아질 거라고 치자. 그럼 대체 회사는 언제부터 청년들에게 이렇게 지극 정성이었을까? 과연 진심이긴 할까? 이는 오피스의 역사를 후벼 파보면 그 답이 보인다.
암울한 조선과 대한제국을 지나 일제강점기를 거친다. 마침내 대한민국이 탄생했다. 대한독립 만세!
모든 관공서는 행정을 해 본 일제시절 경력 공무원들이 쭈욱 자리를 꿰차고 들어간다. 아리가또 개꿀!
토지와 재산이 반납되는 혼란기를 틈 타 지주들과 유학파들이 속속 귀국했다. 주인 없는 자리를 잡고 사업을 열어 제낀다. 이들이 훗날 오피스 위인전에 나오는 회장님이 된다. 이때는 주먹구구로 먼저 벌리면 이기는 거다. 남의 땅도 대충 주인 없어 보이면 내 땅으로 둔갑시킨다. 이름 모를 땅은 나라님이 쏘옥 다 가져갔다. 대 땅따먹기 시대. 그런 시대였다. 적어도 뭘 하면 맞다이로 들어오는 낭만파 오피서들의 시대였다. 사장은 부하의 등 뒤에 숨지 않았다.
일제세대의 키워드는 '애국'이었다. 회사는 '민족주의'였다. 이들의 위인전을 보면 하나같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창업했다고 나온다. 다 거짓말이다. 그냥 돈 벌려고 한 거다. 그러니 오죽하면 그 시대 깡패들마저 애국으로 미화가 될까? 뭐 그럼 그 깡패들은 다 지역상권 경비사업 이런 거냐? 그걸 회사의 전신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제 아무리 넥타이를 매도 건달은 오피서가 아니다. 그냥 야인이다.
일찌감치 자리 잡아 사업을 벌린 일제세대는 중년이 된다. 이제 청년들을 뽑는다. 이름하여 6.25 세대!
"야! 야! 너네는 나라라도 있잖아! 라떼는 나라도 없었어! 나라 없는 설움을 알아? 뭐만 하면 일본이 다 뺏어! 대출받으면 조선인은 이자가 3배야!"
이들의 꼰대질과 세대 갈라치기 기준은 나라가 있냐 없냐였다. 전쟁통의 황무지 속 가난과 싸우며 억세게 자란 6.25 세대. 보고 배운 것 없는 이들. 그렇구나. 더 어려운 환경에서 해 오신 분들이구나. 잘 배워야지. 잘 살아봐야지. 그런갑다 했다. 6.25 세대의 키워드는 '헌신'이었다. 회사는 '가족주의'를 택했다. 합심하는 협동 정신. 무슨 일이든 묵묵히 헤쳐 나갔다. 이후 믿는 회사에 제대로 헌신짝이 되어 버리지만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죽기 밖에 더 하겠어?" 어머니들은 낯선 도이칠란트 땅에서 차별과 수모를 당하며 일했다. 아우슈비츠 광산에서 맞은 아버지들의 겨울은 혹독했다. 조국을 지킨 군인들은 낯선 비엣남에서 대 어메리칸 제국의 총알받이가 되어 전쟁을 치러낸다. 그곳의 정글은 미로 같았다. 마침내 사이공은 불타 올랐다. 중동의 페르시아 제국에는 사막에다 공장을 지어댔다. 한 여름의 데저트. 오아시스 따위는 없었다.
이 무렵 인류는 부푼 꿈을 안고 중력을 거스르며 달 위를 걸었다. 그리고 셀카를 찍었다. 대륙의 아이들은 붉은 완장을 차고 몽둥이를 든 채 무리지어 다녔다. 프랑크 왕국 어느 대학 강의실에는 '구조는 거리로 나아간다.'라고 적혀 있었다.
"여러분! 아침은 서울에서! 점심은 부산에서! 저녁은 다시 서울에서 먹게 해 드리겠습니다."
대한의 왕이 선포했다. 새마을 운동이다. 잘 살아보세를 외친다. 여기저기 공장이 들어선다. 굴뚝이 연기를 뿜어댄다. 고속도로가 쫘악 깔린다. 아파트라는 건물이 들어선다. 곳곳에 자동차가 굴러다닌다. 마이카 시대라는 말이 생겼다. 우뚝 솟은 63 빌딩의 금빛은 한강을 노랗게 물들였다. 올림픽의 열기에 세계는 하나가 되었다. 모두가 쏘울로 모여들었다.
시간이 지나 6.25세대는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산업화의 주역이 되었다. 회식 때 삼겹살에 소주 한잔 들이키면 늘상 하던 이들의 패시브 단골 멘트.
"대한민국 이거 다 우리가 만든 거 아닙니까?"
마침내 이들이 회사의 중심이 되었다. 회사에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과감한 운동권 세대가 들어왔다.
"야! 야! 우리 땐 말이야! 허연 쌀밥에 고깃국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어! 니들이 고생을 안 해 봤지? 먹고살만하니까 데모나 하구 말이야!"
운동권 세대들은 눈치를 봤다. 한 마디 잘못하면 어디로 끌려가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기다려 왔다.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내 할 말 다하고 살기를. 그리고 기나긴 시간을 지나 마침내 서울의 봄이 왔다. 그리고 광주는 피로 물들며 눈물을 삼켰다.
운동권 세대들의 키워드는 '투쟁'이었다. 회사는 '집단주의'를 택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렇게 주입했다. 인생에 회사가 가장 우선인 세상이 되었다. 야근 주말근무는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사업의 발달은 문화의 발달로 이어졌다. 화려한 문화예술을 수놓은 90년대를 지나 세상은 1999년을 주목했다. 이 무렵 사이비 종교들도 종말론을 타고 기업화되며 오피스 게임에 합류했다. 결국 노스트라다무스의 세계종말론은 오지 않았다. 요한의 계시는 빗나갔다. 어둠의 대왕은 강림하지 않았다. 전재산을 바친 사람들은 하늘의 에덴으로 승천하지 못했다. 그냥 땅을 치며 거지가 됐다.
IMF로 나라가 망했다. 회사의 노비 집단 살육 퀘스트가 처음 등장한다. 주역인 6.25세대가 이 시기 수년간 모두 죽어 나갔다. 주니어였던 운동권 세대 대부분은 목숨을 보전했다. IMF와 유럽 금융위기를 틈타 비교적 빠르게 치고 올라온 운동권 세대. 타이밍도 절묘했다. 좋다 좋아.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했다. 회사의 주역도 바뀌어 가고 있었다.
운동권 세대들은 개성 있고 반항적인 X세대에 주목했다. X세대는 다르다.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낸다. 평범함은 거부하는 우리들만의 X. 이들과 어우러져야 한다. 회사는 그렇게 홍보했다.
운동권 꼰대들은 회식 때마다 무용담으로 데모하다 깜빵 간 얘기를 해댔다. "야! 너넨 할 말이라도 다 하고 살잖아! 얼마나 민주적이냐? 라떼는 말야! 말 한마디 잘못하면 그냥 쥐도 새도 모르게 깜빵이야!"
X세대 키워드는 '개성'이다. 회사는 '문화주의'를 택한다. 월급 이외에도 문화생활 지원비, 복지 카드 같은 사탕들을 내놓았다. 낚시는 어렵지 않았다. X세대들은 조용히 지켜봤다. 아버지들이 한순간에 짤려나가는 모습을.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었다. 운동권 세대들은 깨인 자들이니 뭔가 다르겠지 하는 기대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내로남불. 다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신용사회가 가속화된다. 평생직장이란 말은 이미 사라졌다. 수요 공급의 불균형으로 취업 자체가 어려워졌다. 회사는 어느덧 운동권 세대들이 꼭대기에 있는 가운데, X세대들이 임원으로 등극하고 있다. 모두 리더로 자리 잡았다.
"요새 애들은 지 밖에 몰라. 라떼는 말야! 막내가 나서서 다 하고 그랬는데 말야! 요즘 것들은 말이야! 어딜 니 일 내 일을 따져!"
X세대도 똑같은 꼰대가 되어가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회사는 개인주의적이고 디지털에 익숙한 MZ 세대를 잡아야 한다고 외친다. 그들이 회사의 미래라며. MZ 세대의 키워드는 '개인'이다. 회사는 '평등주의'를 택했다. 소통의 평등. 업무의 평등. 직급도 평등. 월급도 평등? 이건 아니지 않아?
실망한 MZ들은 적당히 피해 다닌다. 그렇게 대이직과 대퇴사의 시대가 열린다. 맞다이로 쪼개던 낭만파 오피스 시대는 막을 내렸다. 보스는 부하의 등 뒤에 숨는다. 가족 이런 말을 회사는 쓰지 않는다. 온갖 중상모략이 난무한다. 그래. 이제는 각자도생이다.
MZ 세대는 극심한 취업난을 뚫고 회사에서 자리 잡았다. 아버지들이 뻑하면 부당하게 짤려나가는 것을 보고 자랐다. 비정한 자본주의. 토 나올 정도로 간신히 취업했더니 별거 없는 현실을 이미 자각했다. 차가운 자본주의. 그래도 회사는 청년들을 좋아한댄다. 그닥 해주는 건 없는데 말이다.
"라떼는 말야! 취업이 을마나 어려웠는데 말야! 야! 알파! 니들은 머리 수도 적으니까 유리하잖아!"
이제는 한술 더 떠 곧 다가올 알파 세대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한다. 이제는 뭐라고 하려나?
회사는 AI 사고방식을 기본 탑재한 알파 세대 청년들이 회사의 미래라고 할 것이다. 알파 세대들은 부모의 손에서 제대로 자라고 있지 못하다. 맞벌이가 디폴트 된 가정환경에서 외로움과 싸워나가고 있다. AI와 기계에 밀려 허무하게 오피스 게임의 종말을 맞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펼쳐질 오피스 게임은 어떠할까?
시대에 따라 회사가 좋아하는 부류가 달라지는 것일까? 아니다. 회사는 그냥 청년들을 좋아할 뿐이다. 회사의 미래여서가 아니다. 진실은 아주 심플하다. 값이 싸다. 부려먹기 쉽다. 가스라이팅이 수월하다.이게 진짜 이유다. 역사적으로 그래왔다.
여기까지 살펴본 오피스 꼰대사.
아마 조선 고려 삼국시대로 돌아가더라도 대감님들은 청년 노비를 좋아했을 것이다. 힘 잘 쓴다. 비싼 값에 팔기 좋다. 자식 낳으면 노비 한 명 공짜로 추가된다. 그래서 청년 노비가 미래라고 했을 것이다.
미래 같은 소리 하네. 그냥 싸게 부려먹고 이용하기 좋은 거잖아! 이게 진실 아니냐? 맞지? 딱 걸렸지?
P.S. 나중에 초맹의 오피스 히스토리 이런 책을 읽어보면 더욱 신랄하고 자세하게 나올 것이다. (아직 그런 책 없다. 자꾸 검색하지 말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