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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에선 과일을 깎지 않는다

사랑의 크기

by 서나송


아이가 오려면 아직 한참인데,

벌써부터 간식을 준비한다.

오늘은 좋아하는 사과와 자두를 깎아 놓았다.

혼자 있을 땐 귀찮아서 잘 먹지 않는 과일도

몇 시간 전부터 깎아두는 나를 보며

이 또한 사랑이라 생각한다.



저녁 식탁이 치워질 새라

후식으로 과일을 깎는다.

네가 좋아하는 걸 알고

곧 찾을 거라는 걸 알기에

내 밥그릇은 아직 반 공기나 남았는데

네 밥그릇에 한 숟가락 남은 것만 보인다.

이 또한 사랑이지 싶다.



친정에 가면 과일이 한가득이다.

귤 싫다며 귤 한 박스

딸기 비싸다며 딸기 한 박스

멜론은 무슨 맛으로 먹느냐며 멜론 한 박스

다 우리 애들이 좋아하는 과일.

딸이 온다고 하면

부족함 없이 채워지는 냉장고.



접시에 고기가 사라질 새라

잘 익은 고기는 자식 앞 접시에 놓이고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릴 새라

아빠는 발골 장인이 된다.

부모는 몇 점을 드셨는지 '우린 맨날 먹는다'며

밥그릇이 비워지기 전에

과일을 깎으신다.

이 사랑을 배운 걸까.



과일을 깎는 건 단순한 행위이지만

과일을 깎는 마음은 사랑이다.

부모에게는 깎아준 과일을 받고,

자식에게는 깎아준 과일을 낸다.



과일은 아무나 깎을 수 있지만

아무나 먼저 낼 수는 없다.

상대의 밥그릇을 먼저 보는 사람

상대의 필요를 먼저 채우는 사람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깎은 과일을 내온다.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_생택쥐베리 <어린왕자> 중에서






건반 밖 엄마, 서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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