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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와 '빠'사이, 오빠

사랑이 없으면

by 서나송

"엄마~ 삼촌 여자친구가 삼촌에게 뭐라고 부르는 지 알아? 오빠라고 불러! 오빠~"


열살 된 딸은 말해놓고도 부끄러운 듯 발개진 볼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히죽히죽 웃었다.

"아니, 엄마도 아빠한테 오빠라고 부르잖아~ 신기해? ^^"

못 들어 본 단어도 아닌 ‘오빠’. 하지만 뭐가 그리 새롭게 느껴졌을까.


"아니~~ 그 오빠가 아니야~~ 여친이 부르는 오빠는 오와 빠 사이에 뭐가 있어."

오와 빠 사이에 무엇이 있기에 이 아이를 설레게 했을까.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


"오와 빠 사이에 하트가 있어 하트~ 사랑~~"


사랑이라… 소리 없는 언어, 사랑. 오빠라는 단어 사이에 사랑이 있다니… 그럼 내가 부르는 ‘오빠’에는 사랑이 느껴지지 않았던 걸까. 그동안 우리가 나누었던 말들로 얼마나 많은 감정을 나누었던걸까.


말이라는 것은 단순히 소리가 아니라, 그 안에는 감정과 의도가 스며들어 있다. 어떤 말은 따뜻함을 주고, 어떤 말은 가시가 되어 박힌다. 같은 단어라도 말하는 이의 마음과 태도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린다.


성경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고...


말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 사랑이 담기지 않으면 공허한 울림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언어가 곧 감정일까. 말 자체가 감정을 대신할 수 있을까. 아니, 때로는 말보다 말 사이의 공백이 더 많은 걸 말해주기도 한다. 입술에서 소리가 만들어지는 순간보다, 그 말이 나오기 전의 침묵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진짜 마음을 읽는다.


그런면에서 아이들이 참 신기하다. 배우지 않았음에도 말보다 공기를 먼저 읽는 아이들이. 배우지 않았는데 눈빛, 입꼬리의 움직임, 목소리의 떨림, 그리고 타이밍까지 읽어버린다. 우리가 무심코 넘기는 그 모든 것들을 놓치지 않고, 귀로 듣는 것이 아닌 온 감각으로 받아들인다. 어쩌면, 말보다 더 정확하게.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딸이 말한 ‘오빠’ 속의 사랑처럼, 내 목소리에도 사랑이 담겨 있었을까. 아니면 습관적으로 내뱉기만 했을까. ‘사랑해’라고 말하면서도, 그 한마디에 진심이 있었을까, 아니면 그저 의례적인 표현에 불과했을까. 물론 매 순간에 절절한 사랑이 담길 수는 없어도, 평상시 태도가 툭 튀어나온 말투를 대변할 때가 많은건 사실이다. 말이 그저 소리가 되지 않으려면, 그 안에 진심이 담겨있어야 함도 물론이고 말이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말을 의미 없이 내뱉었을까.

진심보다 형식이 앞서진 않았을까.

얼마나 자주 내가 내뱉는 말의 무게를 잊을까.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이 전해지는 방식이다. 같은 말이라도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으면 위로가 되고, 무심하면 차갑게 느껴지는 것처럼. ‘오빠’라는 한 단어에 사랑이 담길 수도 있고, 공허한 습관이 될 수도 있으니까.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속담처럼 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말을 둘러싼 공기일지도 모른다. 말과 말 사이에 흐르는 감정, 침묵 속의 진심. 딸이 말한 것처럼, ‘오와 빠’ 사이에 사랑. 그렇지 않으면 그저 울리는 꽹과리일 뿐이다.


오늘도 난 딸을 부르고 남편을 부른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신중하게 좋은 마음을 담아 불러봐야겠다. 듣는 이가 느낄 수 있도록, 그리고 나 자신도 온전히 그 감정을 품을 수 있을 만큼.



서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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