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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불릴 시간

때가 되면, 밀린다

by 서나송



아이 손에 들려온 노란색 때타올 하나.

그 위에 큼직하게 적힌 문장,

“수학에는 다 때가 있다!”


처음엔 웃음이 났다.

전단지 하나에 때타올을 끼워 넣다니,

기발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누군가 고심 끝에 짜낸 마케팅일 텐데,

그 센스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런데 문장을 곱씹다 보니, 마음 한켠에서 생각이 이어졌다.

그래서, 그 때는 대체 언제일까?


지금?

고시 본다는 일곱 살?

내용이 슬슬 어려워지는 고학년?

엄마 마음이 괜히 불안해지는 어느 날?

아니면,

아이가 어느 날 조용히 말하는 그 순간일까.

“나도 이제 한번 해볼래.”

언제가 될지 모를, 그 말 한마디가 나올 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타이밍이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 ‘때’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면,

불린 때를 잘 미는 일 아닐까?

그리고 밀기 전에 때를 불려야 하는 것.


목욕탕에 가면 그렇다.

때타올로 문지르기 전에,

뜨끈한 온탕에 몸을 담가야 한다.

살갗에 물이 스며들고,

피부가 말랑해져야 비로소 때가 밀린다.

물기 없는 살을 억지로 문지르면 상처만 남을 뿐이다.


아이의 때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이 스스로도 감당할 수 있는 준비가 될 때까지,

자기 속도로, 자기 방식대로

서서히 불려야 한다.

그 불림의 시간은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더 자주, 더 쉽게 조급해진다.


하지만 밀어붙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거다.

아이가 자기 안의 무언가를 충분히 불릴 수 있을 때,

자기 의지로 밀어내겠다는 마음이 올라올 때,

그게 진짜 ‘때’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생각한 그 때는, 늘

아이보다 조금 빠른 것 같다.

아이가 아닌, 내 불안의 시계로 잰 시간이니까.


기르며 배운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내가 밀고 싶은 ‘때’를 꾹 눌러 참고,

아이가 불려가는 그 시간을 기다려주는 일이라는 걸.

그리고 그 기다림은,

결코 게으른 방관이 아니라는 것도.


각자의 때는 모두 다를거다.

어떤 아이는 오래도록 온탕 속에 머물러 있을 것이고,

어떤 아이는 금세 몸을 적시고 말랑해질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시기가 빠르든 늦든

그 ‘때’를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버텨낼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해야 덜 아프고, 더 오래 갈테니까.


부디, 그 때가 왔을 때

아이 스스로 용기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엄마인 나는 그때까지,

옆에서 조용히 따뜻한 물을 받아두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서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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