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들을 만나서 1박 2일 부산 여행을 하였다. 한 친구가 부산에 살아서 우리 같은 아줌마들이 시간대비 알차게 놀 수 있는(?) 여행 코스를 짰다.
첫 날은 해운대의 해리단길에서 점심을 먹고 광안리 쪽의 수변공원으로 가서 민락마켓을 구경하였다. 그 후 LP바에 가서 칵테일을 한 잔 하며 깊은 얘기를 나누었다. 육아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행복했다. 강박장애는 옅어지고 있었고, 친구들과 있으니 우울한 기분도 많이 가라앉았다.
다들 칵테일 한 잔 씩 하고 대리기사님을 불러 일광의 한 호텔로 향했다. 친구가 씻는 동안 이것 저것 짐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리려고 휴지통에 다가섰다가 멈칫했다.
‘숙박시설의 쓰레기통이 더러우면 어떻게 하지? 누가 더러운 체액이 묻은 휴지를 넣었고, 휴지통을 씻지 않은 거라면?’
강박사고가 다시금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불안해진 나는 쓰레기통 뚜껑을 열어 쓰레기를 넣은 다음, 싱크대에서 손을 씻었다. 그 호텔은 싱크대, 테이블, 중문이 있는 구조였는데, 이번에는 중문을 닫으려고 하다가 깜짝 놀랐다. 중문에는 약간 하얗게 손자국이 묻어 있었다.
‘누가 정액을 만지고 중문을 만진거라면?’
나는 손을 씻고 또 씻었다.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이 여기까지 미치자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었고, 강박장애가 더 심해진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나는 왜 항상 이 모양일까. 왜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생각하고 그로 인해 나를 옥죄는 걸까?’
그 때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친구들은 피곤했는지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지만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다시 강박장애가 심해질 것 같은 불안감, 고등학교 때 힘들었던 과거로의 회귀. 다시는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튿날, 친구들과 조식을 먹고 송정의 한 카페에 갔다. 친구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의 생각을 불쑥 말했다.
“얘들아. 사실 나 어제 한숨도 못잤어.”
“진짜? 왜? 무슨 일 있나?”
“나 강박장애가 다시 심해진 것 같아. 어제 호텔에서…(중략)...”
“은진아. 나는 전혀 그런 줄 모르고 잠만 잤어. 미안해.”
내가 잠을 못 자고 밤새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강박사고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알고 친구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안해했다. 자신의 일처럼 걱정해주는 친구들이 있어 마음이 든든해졌다.
“은진아. 진료일이 되기 전에 빨리 진료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아.”
친구들의 조언에 진료 날짜보다 일찍 병원에 방문했다. 의사 선생님께 여행 동안 있었던 일을 말했다.
“은진씨가 느꼈던 것은 다른 종류의 불안이에요. 만지면 오염물질이 몸에 스며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과거에 그런 일이 있어서 불안함을 느낀 것인데,
예를 들어 시험결과가 좋지 않은 학생이 이를 해결하려면 시험 결과가 잘 나와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거죠.”
나는 과거에 타액과 이성에 대한 불안감, 기타 오염물질에 대해 강박증을 앓고 있었고, 대학시절 이를 극복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기와 나의 건강에 해를 끼칠까 두려운 오염물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타액에 관한 불안감은 어느 정도 옅어져 있다. 즉, 과거에 강박증을 이겨 냈다는 경험을 이미 하였기에 이제는 현재 앓고 있는 강박장애를 이겨내는 경험을 통해 그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해석했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다는 말이 있다. 그것처럼 강박장애와 우울증이 아니더라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인생의 고난이 다가올 때 이를 해결하거나 지금의 고난을 덮을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함으로써 어려움을 이겨내거나 상처를 치유해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