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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Feb 15. 2020

그런 고민

#01 타인으로 결정되는 나의 가치

2020년 1월 12일 일요일


첫 잡지사에서의 마지막 주말 출근날이었다. 엄마표 떡국을 먹고 옷을 입었다. 미세먼지 주의보에 맞춘 정도의 화장을 하고, 현관에 섰을 때 마중 나온 엄마가 갑자기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 생각하지 말고 힘내”


“??”


그런 말 한 적 없는 엄마의 행동에 나는 조금 놀랐다.


“왜 그래. 안 하던 소리를 하고.”


공대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한 나는 대학교 3학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후 자연스럽게 매체를 찾아 나섰고, 매력적인 비주얼과 흥미로운 콘텐츠를 주로 다루는 잡지를 선택했다. 잡지사는 공채로 기자를 뽑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다. 악행에 가까운 그곳만의 관습이자 열정 페이로 치러지는 편집부 어시스턴트가 잡지 기자로서의 첫 퀘스트였다. 게임 속 NPC들의 터무니없는 지령에 따라 한 몸 불살라 수많은 몬스터를 죽여 얻어낸 아이템을 바치는 듯한 가지각색의 일들이 가득했다. 한 달에 7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았지만, 그러한 일들을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 자신을 보며 경험치를 높인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분명 뜻깊던 일도 있었으나, 결국 내부에서는 기자가 되고 싶어서 배우러 온 젊은이였기에, 열정이란 말 아래 화장지처럼 쉽게 소비되어 마음과 몸을 다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독립해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싼 값으로 쉽게 부리는 젊은이 취급은 그대로였고, 내가 한 일에 대한 합당한 급여를 받고 있는지도 늘 의심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일을 열심히 하는 것, 동료와 술을 먹으며 푸념을 늘어놓는 것뿐이었다. 힘든 시기였다. 이 와중에 날 더 힘들게 했던 건 엄마의 조바심이 일군 말들이었다.


"돈도 안 되는 일을 굳이 해야 하니?"

"그래서 도대체 기자는 언제 되는데?"

"언제 정직원 되는데?"


쉬는 날에는 그런 엄마와 마주하는 시간이 괴로웠고 자괴감까지 밀려와, 엄마를 멀리했다. 그 관계는 내가 정 기자가 되고, 큰돈을 벌 수 있던 프로젝트로 용돈을 드린 후에야 풀어졌다.


"내가 말했지. 너는 잘됐을 거라고. 네가 자랑스럽다"


엄마는 그제야 내가 해낸 것에 대해 자신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마냥 나를 믿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들에 기쁘기보단 날 가두는 부담감이 되었다. 또 나는 큰돈을 벌어야 하고, 엄마가 바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퇴사를 고민하며 지쳐있던 어느 날 엄마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딸은 무슨 일 하냐고 묻더라. 그래서 기자라고 했는데, 잘 알지 못하는 그 사람인데도 딸 잘 키웠다고 하더라고. 네가 자랑스럽더라. 어디나 다 똑같으니까 그만둘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일해."


역시 기쁘지 않았다. 부모가 느낀 자식에 대한 자부심이 곧 타인의 시선으로 결정된 것이니까. 나는 누구를 위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내 꿈의 본질이 먹구름에 가려지는 듯 탁해졌다.


그런 엄마가 나에게 왜 그런 말을 건넨 것일까. 나는 묻지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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