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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Feb 17. 2020

그런 고민

#02  또 하나의 자신, 친구

TV 예능 프로그램 <ㅇㄴㅎㄴ> 걸그룹 GG 완전체 편에서 한 멤버가 멤버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던 장면이 있다.


OO는 나의 자부심,

OO는 나의 뚝심,

OO는 나의 욕심


그간 어떤 시간들이 그들을 끈끈하게 묶었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서로를 얼마나 아끼고 믿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중 하나였다.  


나는 1년 전, 14년 지기 친구들과의 관계를 정리하기로 했다. 중학생 때부터 모두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로 싸우기도 하며 시끄럽게 어린 시절을 함께 했다.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을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어느새 모두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다른 환경에서 만난 사람과 적응하고, 각자 가치관을 만들며 성장했다. 몸이 떨어져 있으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우리는 그런 시간들이 늘어나면서 멀어져 갔다. 그리고 가치관의 차이는 관계의 틈을 만들었다.


우리들은 대부분 맏딸들이었다. 일찍이 철이 든 듯 어른스러운 아이들이었다. 성실히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고, 부모에게 걱정 끼칠 일을 만들지 않던 아이들이었다. 무엇보다 함께 있을 때 즐거웠다. 그 기억이 모질게도 그 아이들을 놓지 못하게 했다. 나는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화도 많이 났고, 어느 날엔 울면서 이 고민을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만남의 의미는 점점 희미해져만 갔다.


야. 이건 관계를 바라보는 의지의 차이야.

나머지는 이관계가 안중요한가보지.

근데 왜 우리만 맨날 이렇게 말해야 하냐.

안 하련다.


우리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멀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연애하고, 결혼하면 다 그렇다고. 무슨 의미인지는 충분히 알았지만, 그것이 왜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야 하는지 납득하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결국 멀어질 관계일 텐데, 왜 우리는 이 관계에 노력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그들은 어차피 멀어질 것을 알고, 똑똑하게 준비하고 있었던 걸까?

누구는 이 관계를 필요로 하고, 누구는 필요하지 않았던 걸까?

왜 나처럼 행동하지 않을까?

왜 나와 같지 않을까?


그렇게 꼬리를 물던 고민은 어두운 우물을 파냈다. 그 안에 그들과 함께 가둔 채, 생각을 멈췄다. 어쩌면 나는 이 관계에 내 바람을 투영시켜 억지로 유지하고자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저 관계의 정도는 다르거나 각자의 삶에 집중하고자 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를 깨닫고 내 우물을 열었지만, 말라있을 뿐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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