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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일당 Jun 03. 2021

젖은 솜이불 모드

151일째, 서른.

 나는 삼십 년을 가까이 살았어도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게 서툴다. 어떤 날은 아침을 맞고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 한 번 켜는 게 너무나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 몸도, 마음도 며칠 째 대야에 물 먹은 채로 잠겨 있는 솜이불 같이 무겁다. 거기다 꿉꿉하다. 지난날 상쾌하고 보송한 아침을 맞이했던 나는 기적이었다. 오전 내내 깨었다고, 그렇다고 잔다고 볼 수 없는 상태로 늘어졌다. 유일한 목적을 가진 움직임이라고는 어린 고양이와 늙은 고양이의 생명을 유지하는 일. 캔을 따서 밥그릇 두 개에 담고 남은 캔은 밀봉해서 냉장고에 넣는다. 두 고양이가 밥을 먹을 동안 간밤에 볼일을 본 고양이들의 화장실을 정돈하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바닥에 튄 모래를 쓸어낸다. 밥을 다 먹고 난 밥그릇에 물기가 마르기 전에 싱크대로 가져가서 물을 적시고 닦는다. 그렇게 화장실 청소는 아침저녁 두 번, 밥은 세 번. 감상 없이 기계적으로 해내는 일이다. 이마저 없었다면 일상은 솜이불에 먹혀 진작 무너졌을 게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아닌 다른 생명을 돌보는 일이 나의 일상을 일상 되게끔 지탱한다. 솜이불을 터트려서 조각조각 솜으로 바람에 날아가고픈 마음을 다독인다. 

 젖은 솜이불 모드에는 고양이 돌보미로 전업한다. 나의 일상과 알람은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시간에 맞춘다. 그렇게 설정이 되면 고양이 돌봄 시간을 제외한 시간만 채우면 하루 완성이다. 고양이를 먹이면 '나도 뭐 좀 먹을까?' 하는 생각을 해내는 게 조금 덜 어려워진다. 고양이 화장실을 정돈하면 자연스레 나와 고양이가 함께 쓰는 공간을 정돈하게 된다. 어린 고양이가 늙은 고양이에게 괜한 시비를 걸면 내가 중재함으로 나의 판단력과 지성을 쓴다. 그리고 '어린 고양이가 심심하구나'라는 결론을 도출하고 강아지풀 모양의 장난감을 적절히 이용해서 어린 고양이의 사냥 본능을 발휘하도록 움직이면서 운동성과 율동성을 띠게 된다. 그러면 몸은 근육을 쓰고 더운 기운이 돌고야 마는데, 이는 대야에서 꺼낸 솜이불이 마르는 데 일조한다. 대야에 워낙 오래 방치되고 솜도 두꺼워서 언제 다 마를는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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