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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일당 Jun 08. 2021

서른의 장마를 맞았다

154일째, 서른.     

<오늘의 성공> 

☑휴일, 비 오는 날 혼자 카페 가기  

   

 여름 장마가 오기 전에 먼저 서른의 장마를 맞았다. 소나기는 잠깐 우산 없이 맞아도 괜찮다, 곧 그칠 거니까. 하지만 서른에 예고도 없이 맞이한 감정의 장마는 언제 끝날지 몰라 당혹스럽다. 작금의 상황을 인지하는 데만 열흘을 보냈다. 그 사이 나의 영혼은 쫄딱 젖어서 파리해질 대로 파리해졌다. 아침에 눈 뜨기, 나갈 채비를 하기, 끼니를 챙겨 먹기, 밤에 잠들기 같은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생활이 어렵다. 할 수야 있는데, 이전에는 큰 힘 들이지 않고 가뿐히 해냈던 일들도 요즘은 젖 먹던 힘을 다해야 겨우 할 수 있을 정도.

 ‘이게 이럴 일이야?’ 

나에게 황당하고 어이없는데, 이렇게 힘겨운 일이 된 게 현실이다. 어느 날, 일하다가 잠시 쉬면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요즘의 사태를 어떻게든 돌파할 수를 찾고자 집어 든 책이었는데  책을 쥔 손과 어깨에 중력이 몇 배로 가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책 한 장의 무게를 온몸으로 겨우 지탱하는 것 같았는데,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그 무게를 느끼는 거라 울상이 됐다. 사전의 정의처럼 딱 떨어지게 설명할 수 없지만 서른의 장마는 이런 경험들의 집합체다. 빗속에서 나는 무기력하게 맞고 있기도, 한 손은 허리춤에 대고 다른 한 손은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기도 한다. 무기력과 삿대질 어느 사이에서 빙글빙글 도는 중이다. 

비가 내린다. 하루에 한 가지만 성공을 하기로 결정해 보는 게 오늘의 방황. 여기서 성공이란 ‘어떤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대로 하는 일’이다. 나는 오늘 카페를 가기로 했다. 마음은 어제 저녁에 먹었는데 그대로 하기까지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집에서 5분 정도 걸리는 카페를 가려면 침대에서 일어나야 한다. 화장실에 가서 양치하고 세수를 해야 한다. 양치를 하기 위해서는 칫솔을 들고 치약 뚜껑을 열어야 한다. 장마 동안에는 이 당연하고 소소한 일들 하나하나가 철봉에 매달리기를 할 때 들이쉬고 내쉬는 숨과 꽉 쥔 주먹처럼 힘겨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페를 가기’는 대단한 미션임파서블인 셈이다. 저녁 8시가 넘어서 나갈 채비를 마쳤다. 삐-리-릭~ 나는 드디어 철옹성과도 같은 문을 열고 나왔다. 현관문을 나서게 된 것만으로 기쁘다. 양산도 되는 가벼운 우산을 펴고 머리 위로 든다. 노는 손으로 우산 밖에 나가서 비를 만진다. 이 기분은 광복절 특사. 스스로가 대견하다. ‘내가 나왔어, 나왔어!’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카페에 도착하기 전에 알았다, 오늘 하루 나 성공했다는 걸. 오늘의 방황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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