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람 말고 언니를 좀 쐬야겠어

서른의 저주

by 애일당

153일째, 서른.


나의 사랑하는 친구, 요가 언니는 실제 요가 수행을 알려주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데, 삶도 요가를 닮아서 요가 언니다. 언니는 지금 153일째 서른한 살, 그러니까 나와는 한 살 차이다. 출근길에 문득 이 언니는 서른을 어찌 견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내가 서른의 저주에 걸린 것처럼 견디는 하루들을 보내는 것 같다. 서른은 “내가 뭘 했다고!” 하고 억울해할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내가 그런걸. 서른의 저주 중 하나, 설레지 않는다. 이 저주는 내게서 경탄의 능력을 앗아갔다. 이것이 얼마나 내 삶의 사기를 떨어뜨리는지 모른다. 눈이 녹고 아침이 오고 꽃이 피고 녹음이 짙어지는 변화들이 놀랍지 않고 여사로 보일 때 생기는 죽는다. 그래서 나는 요즘 생기를 잃는 나날에 죽을 지경이다.

무늬가 비슷한 요가 언니와 나는 서로 연결된 보이지 않는 실이 있는 것 같다. 둘 중 실을 당기면 상대방이 안다. 아침에 한 언니 생각이 실을 타고 언니에게 닿았나보다. 그날 낮에 언니에게 문자가 왔다. 언니의 문자에 참을 수 없는 재채기 같은 말이 나왔다.

“언니 나 요즘 이상해. 힘든 거 같아. 근데 왜 그런지 몰라서 괴로워.”

맥락도 없는 빈약한 말을 언니는 역시나 맥락 없이 받아 준다.

“그랬구나, 으이구~ 고생하고 있네.”

답문을 보는 순간 목구멍 끝에 묵직하고 뜨듯한 게 느껴진다. 목구멍부터 순식간에 온몸이 녹는다. 그러고 언니와 몇 번의 문자를 더 주고받았다. 언니가 8월에 내게로 와서 그동안의 회포를 풀기로 했다. 그 약속을 고이고이 마음 한켠에 모신다.

대화를 갈무리하면서, 요가 언니가 제안을 하나 한다.

“우리 만날 때, 니 이틀, 삼일이라두 콧구녕에 바람 좀 쐬고 와. 내가 냥이들 밥 주고 놀고 할게.”

편지든 직접 마주대 하든 그 소통의 방법이 무엇이든 간 상관없이 환기되는 사람이 있다. 휴양지에 가려고 채비할 때, 출발했을 때의 설렘과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 아니 언니. 나는 언니를 좀 쐬야겠어. 나는 언니를 쐬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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