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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일당 Jun 04. 2021

나는 바람 말고 언니를 좀 쐬야겠어

서른의 저주

153일째, 서른.

   

나의 사랑하는 친구, 요가 언니는 실제 요가 수행을 알려주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데, 삶도 요가를 닮아서 요가 언니다. 언니는 지금 153일째 서른한 살, 그러니까 나와는 한 살 차이다. 출근길에 문득 이 언니는 서른을 어찌 견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내가 서른의 저주에 걸린 것처럼 견디는 하루들을 보내는 것 같다. 서른은 “내가 뭘 했다고!” 하고 억울해할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내가 그런걸. 서른의 저주 중 하나, 설레지 않는다. 이 저주는 내게서 경탄의 능력을 앗아갔다. 이것이 얼마나 내 삶의 사기를 떨어뜨리는지 모른다. 눈이 녹고 아침이 오고 꽃이 피고 녹음이 짙어지는 변화들이 놀랍지 않고 여사로 보일 때 생기는 죽는다. 그래서 나는 요즘 생기를 잃는 나날에 죽을 지경이다. 

무늬가 비슷한 요가 언니와 나는 서로 연결된 보이지 않는 실이 있는 것 같다. 둘 중 실을 당기면 상대방이 안다. 아침에 한 언니 생각이 실을 타고 언니에게 닿았나보다. 그날 낮에 언니에게 문자가 왔다. 언니의 문자에 참을 수 없는 재채기 같은 말이 나왔다.

“언니 나 요즘 이상해. 힘든 거 같아. 근데 왜 그런지 몰라서 괴로워.”

맥락도 없는 빈약한 말을 언니는 역시나 맥락 없이 받아 준다.

“그랬구나, 으이구~ 고생하고 있네.”

답문을 보는 순간 목구멍 끝에 묵직하고 뜨듯한 게 느껴진다. 목구멍부터 순식간에 온몸이 녹는다. 그러고 언니와 몇 번의 문자를 더 주고받았다. 언니가 8월에 내게로 와서 그동안의 회포를 풀기로 했다. 그 약속을 고이고이 마음 한켠에 모신다. 

대화를 갈무리하면서, 요가 언니가 제안을 하나 한다. 

“우리 만날 때, 니 이틀, 삼일이라두 콧구녕에 바람 좀 쐬고 와. 내가 냥이들 밥 주고 놀고 할게.”

편지든 직접 마주대 하든 그 소통의 방법이 무엇이든 간 상관없이 환기되는 사람이 있다. 휴양지에 가려고 채비할 때, 출발했을 때의 설렘과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 아니 언니. 나는 언니를 좀 쐬야겠어. 나는 언니를 쐬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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