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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일당 Jun 09. 2021

오르막에 만난 풀

155일째, 서른 

담벼락 틈에 핀 이름 모를 풀은 얼굴 붉히지 않는다. 주위는 온통 다 시멘트인데 그 틈바구니에 저 혼자 폈다. 흙 한 줌에 뿌리 내리는 생명력. 나는 전혀 다른 둘이 어우러져 ‘풍경’이 되는 게 좋다. 

밤 10시가 좀 넘는 시간, 퇴근하고 비척비척 오르막을 오르던 중 만났다. 집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가파르고 띄엄띄엄 가로등이 있다. 그래선지 담에는 오르는 이들의 안전을 약속하듯 ‘무슨 동네 안심 귀가 길’이라고 큼지막하게 글자가 걸려 있고 불빛도 나온다. 구청의 설치 의도에 들어맞진 않지만 나는 저 글자를 보면 집에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이 든다. 오늘따라 눈에 띈 글자 옆으로 난 풀. 환한 불빛 때문에 더 가까이 가면 잎맥도 보이겠다. 이름을 모르니 잡초다. 어차피 이름 붙이는 것도 사람, 모르는 것도 사람이니 풀로서는 잡초라 불린들 아무 상관 없지 않을까. 그리고 사람은 위로받는다. 무심하게, 묵묵히 삐죽 나 있는 풀이 너무 씩씩하고 의젓해 보여서. 요즘은 내가 세상과 상관없는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 세상이 북극이나 남극, 시칠리아면 괜찮겠는데 내가 사는 집, 가는 길, 만나는 사람과 관계들이니 괜찮지 않다. 요즘은 어디서 뭘 하든 스스로 어색하게 여겨지고 섞이지 않는다.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나와 세상이 물과 기름처럼 태초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것 같다. 내가 어쩔 도리가 없는, 그런 거 말이다. 사실 같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게 너무 부끄럽고 외로워서  차라리 내가 연기처럼 사라졌으면 한다. 적어도 연기는 공기 중에 섞여서 시나브로 스며드니까.   

대견한 풀. 저 피어는 곳과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면 저리 담 틈에 피지 못 했을 테지. 저 처음, 봄바람에 날린 씨앗이 내려앉은 곳이 우연하게도 담 틈이었던 것이나 내가 엄마 태에 자리 잡은 것이나 무에 그리 다를까 싶다. 생명이 자랄만 한 틈이 있었는지는 피어난 풀을 보고 안다. 내가 지금 여기 살아 있는 걸 보니 세상에 한 줌, 내 자리가 있나 보다. 나도 세상과 어우러지는 풍경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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