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훈 Oct 24. 2022

觀 - 깨달음과 ESG경영

부자로 가는 길에 만난 수행자 (13) 2-5

부자로 가는 길에서 만난 수행자(13)


2-5. 관조하기(觀) - 깨달음과 ESG경영


깨달음과 ESG 경영


석가모니의 가르침에서 말하는 자비는 내가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몸을 돌보는 것입니다.



내가 따로 있고 남이 따로 있는 상태에서의 자비는 분명히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이고 좋은 일이지만 온전한 자비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와 남이 구별되어 있는 분별심에서 나온 일이기 때문입니다. 개체적으로는 분명히 다르지만 우주의 시선에서, 높이 떠오른 시선에서는 우리는 둘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마치 무거운 물건을 들 때 나의 오른손이 왼손을 돕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를 돕게 됩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동체대비심(同體大悲心)이라고 합니다. 한 몸이 되어 발휘하는 자비심이라는 말입니다. CEO의 시선이 이렇듯 높아지면 기업의 품격도 함께 높아집니다.




기업의 미래전략에서 요즘 피할 수 없는 화두가 환경(Environment)과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입니다.


ESG는 기업의 의무가 아니라 의식의 진보가 일어난 기업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기업이 더 이상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지상과제가 아니라 동체대비심을 발휘하여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단지 글로벌 지사를 가지고 더 많은 현지 판매처를 늘리는 것만이 기업의 확장이 아닙니다. 기업이 스스로의 존속이 자신의 역량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은 수행자가 자신의 몸의 경계가 피부에 한정되지 않고 이웃과 환경, 우주로 뻗어있음을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Environment 환경은 기업이 활동을 하기 위한 모든 재료를 공급해주는 Supplier공급자입니다. 좋은 기업이 공급자를 홀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Social 사회는 기업의 서비스를 구매하는 고객입니다. 좋은 기업은 고객의 사정을 무시하고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사회공헌이라면 의무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근본을 바라보면 사회의 호의가 없이 지속 성장하는 기업은 없습니다.



그러나 환경이 공급자, 사회가 고객이라는 기능적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합니다. 기업과 환경, 사회가 모두 분리되어 있는 상태에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 관계는 이익이 된다고 판단이 되면 이어지겠지만 자칫 손해가 될 것 같으면 끊어지고 맙니다. 기업이 마치 자신의 몸처럼 환경과 사회를 바라보고 동체대비심을 발휘하여 자신의 현재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진정성 있게 살펴보고 작더라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Governance 지배구조는 기업이 자신의 경계를 어디로 정하는지와 관계되는 문제입니다. CEO와 주주들만의 기업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배구조에 관한 고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속 가능하게 발전하고 성숙하는 기업은 CEO의 의식이 진보하는 것과 같이 자신의 경계가 결코 내부 직원과 주주명부에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2025년부터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의 기업에게 ESG를 공시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기업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성의 문제입니다. 각자의 형편에 맞게 환경과 사회를 고려한 경영은 트렌드에 맞춘 의무적인 퍼포먼스가 아니라 기업의 자아상, 존재 목적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의식의 진보는 CEO의 마음 챙김에서부터


의식의 진보와 확장은 CEO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2,500년 전 인도에서의 한 수행자의 깨달음으로 온 인류의 의식의 진보가 일어나고, 2,000년 전 레반트 지역 한 청년의 깨달음으로 또 한 번 인류의 의식의 진보가 일어났습니다. 1,500년 전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보리달마의 의식의 진보로 동아시아에 몇 백 년간 의식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렇듯 의식의 진보는 한 사람에서 시작하지만 일정기간 지속되면 공동체 속으로 스며들게 됩니다.



동시에 깨어난 일본의 원숭이들



일본의 어느 섬에 사는 원숭이들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연구결과입니다.




연구자들은 진흙이 묻은 고구마를 원숭이들에게 던져 주었는데 원숭이들은 진흙이 묻은 채로 고구마를 먹을 수 없어서 며칠간 방치되었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한 원숭이가 고구마를 냇물에 씻어 먹었더니 그 섬의 나머지 원숭이들도 따라서 고구마를 씻어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 년쯤 지나자 더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느 원숭이가 진흙이 묻은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먹은 것입니다. 바닷물에는 소금을 포함한 미네랄이 풍부해 더욱 유용한 영양분이 많아 원숭이들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며칠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섬과는 떨어진 다른 섬에 있는 원숭이들도 진흙이 묻은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먹기 시작한 것입니다. 두 원숭이 집단은 서로 교류할 수도 없었는데 말이죠. 한 마리 원숭이의 의식의 진보가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서 동시에 원숭이들의 집단적 의식의 진보가 이루어진 셈입니다.



동시에 깨어난 인류의 선각자들




인류의 깨어남에 있어서도 일본원숭이들과 비슷한 현상이 있었습니다. 칼 야스퍼스가 말한 축의 시대에 동서양의 여러 문명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의식의 진보가 일어났습니다. 축의 시대는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정도에 인류의 정신문명에 대한 통찰이 전 지구적으로 일어났고 현재까지도 그때의 통찰을 뛰어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축의 시대를 좀 좁게 보는데 약 2,500년 전후의 시대로 한정할 수도 있습니다.



서남아시아에서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고 동아시아에서는 노자의 도덕경이 완성되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 온 시기를 전후하여 구약이 집대성되었고 페르시아를 중심으로 조로아스터교가 주변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현인들이 나타났죠. 유대교와 조로아스터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을 제외하면 이들은 서로 교류하면서 사상을 발전시킨 것이 아닙니다.



각각 자신의 문화권 내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깨달음의 본질로 들어가면 모든 종교나 철학이 한결같이 인류가 개체적 자아에 머물지 않고 더욱 확장된 자아 개념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불교의 불이중도(不二中道), 성경의 선악과 이야기, 노자의 유무상생(有無相生), 소크라테스가 평생 따랐던 보편적 이성의 목소리인 다이몬의 소리, 조로아스터교에서 천사와 사탄이 모두 최초의 신 아후라 마즈다의 쌍둥이라는 이야기는 모두 한 지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개체적 자아에 한정되어 서로를 구별하지 않고 이웃과 환경으로 자아를 확장하는 연결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21세기가 초연결 사회가 되면서 영성이 주목받는 배경입니다. 원숭이들도 한꺼번에 깨어나는데 인류가 이렇게 발달된 소통의 도구들을 가지고 깨어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모든 CEO들이 파타고니아의 이본 쉬나드 회장처럼 "우리 회사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입니다!"라고 선언하고 자신과 자녀가 가진 모든 주식을 재단에 기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입니다. 아무도 파타고니아 회장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본 쉬나드가 기업으로서의 탄탄한 입지를 굳히고, 그의 의식이 끝없이 확장된 결과입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그것을 목표로 달려가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CEO 개인의 의식 확장이 조직 전체에 스며들 때 기업에도 영성 즉, Spirit도 살아날 것입니다. 모든 구성원들의 의식까지도 확장되면 그것은 이본 쉬나드의 몸이 흙이 되어 지구로 돌아간 후에도 이어질 것입니다.



기업은 CEO의 건강 상태와 무관하게 그 생명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기업은 CEO의 높아진 시선과 함께 높아진 의식을 유지하고 스스로 살아나가고 성숙해 가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성숙한 자녀는 부모와 함께 의논을 하지 일방적으로 말을 듣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기업 생존의 문제를 지나온 CEO의 최종적인 과제는 어떻게 직원들이 높아진 시선과 성숙한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도울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됩니다. 기업도 법인이어서 인격이 있다고 보면, 결국 기업의 삶의 질이 높아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양도 늘어나게 됩니다. 늘 삶의 양, 즉, 생존의 문제에만 매달리는 기업은 오히려 그 최소한의 생존조차 엄청난 투쟁을 해야 하는 힘겨운 길이 될 것입니다. 반면, 환경과 사회를 기업 자아의 확장된 영역으로 인식하고 지혜롭게 적극적으로 돌보는 기업은 더욱 가치가 인정되고 사랑받는 기업이 될 것입니다.



기업이 처한 환경이 전쟁터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자아가 확장된 기업은 주변의 환경이 놀이터처럼 볼 수도 있습니다. 죽기 살기로 경쟁하는 기업과 일과 놀이가 구별되지 않는 기업 중 누가 더 강력할까요? 기업가의 영성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까지 '나에게서 떠오르기'를 통해 나에 대한 관조하기를 마치고 다음 시간부터는 직원들을 관조하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CEO는 직원들의 의식과 감정상태에 대하여 이해하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관조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CEO가 좋은 마음으로 격려나 충고를 해도 직원의 의식 수준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자칫 격려나 충고가 비난이나 고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직원들의 의식 수준을 이해하는 것은 CEO가 성숙한 조직으로 이끄는 첫걸음이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觀 - 에고 바꾸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