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비굴해질 때
때는 늘 지금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확연한데
내 안목이
지금을 떠나
미래로 향해 방황하거나
과거 어느 시점에 머무를 때
마치 무언가 부족한 듯
착각을 일으킵니다.
머리가 쉬지 않고 돌아갈 때
우리는 기억에 의존하게 되고
이때
하나님 나라는 신기루 같습니다.
머리가 쉬고
가슴이 움직일 때
하나님 나라는
지금 여기
눈앞에 펼쳐집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이 다양한 문화에서
다양한 언어로 통용됩니다.
누군가는 본래성품, 불성, 참 나라고 하고
어떤 이는 천명이나 도라고도 합니다.
알아차림, 내어 맡김(total surrender),
깨달음도 모두 이 한 자리를 말합니다.
이 자리는 언어가 끊어지는 곳인데
어쩔 수 없이 언어를 사용하므로
한 마디 더하는 것은
허물을 하나 더하는 것과 같습니다.
깨달은 이는 한 마디를 더할 때마다
오물을 한 바가지씩 덮어쓰는 것과 같습니다.
그 비루함을 넘어서는 연민의 마음이
예수가 세리와 창기와 함께 식사를 하고
붓다가 살인마와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갔던 이유입니다.
늘 불안에 젖어서
자기 생각대로 치료를 받았다 말았다 하는
환자분이 있습니다.
벌써 3개월째 물도 삼키지 못해
큰 병원을 전전하다가 온갖 검사를 다 하고도
제대로 된 진단을 못 받고 수액치료로 겨우
버티며 살던 분입니다.
유언장도 쓰고 재산을 정리하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가
어찌 저희 병원을 알게 되어 오셨습니다.
제게 치료를 다섯 번쯤 받고
이제는 끓인 누룽지 정도 먹게 되어
지난주엔 이젠 살았다며 좋아하셨습니다.
이번 주엔 뉴케어를 줄이고
죽과 누룽지를 먹기로 했는데
어제 밥을 몇 숟가락 먹고
다시 예전 증상이 나타나서
거의 공황상태로 이어져 병원을
오지 않으셨습니다.
밤에 퇴근하면서 남편분과 통화를 했습니다.
다시 죽겠다고 난리를 쳐서
하루종일 아내분 옆에서 꼼짝을 못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환자분을 바꿔달라 해서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 목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그렇게 불안하게
보이진 않았습니다.
“OO님 머릿속에 병아리 한 마리가 살고 있어요.”
즉석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도토리가 머리 위에 떨어졌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고 소리 지르며
쫓아다니던 병아리 이야기 아시죠?”
OO님은 다행히 웃었습니다.
‘휴~ 살았다.’
(만성통증 환자는 웃으면 일단 급한 불은 끈
것입니다.)
“OO님 머릿속에 겁이 많고 불안한 병아리가
한 마리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OO님은 병아리가 아니잖아요? 아주 오랫동안
OO님 속에서 자리 잡고 살아온 병아리의
목소리를 OO님 자기 목소리로
착각하시면 안돼요.”
“그 병아리는 워낙 겁이 많고 불안해서 조금만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하늘이 무너진다!!!’고
떠들며 돌아다닐 거예요. 다음에 또 그럴 거예요.
그럴 땐 어떻게 하시겠어요?”
OO님
“그땐 병아리를 진정시켜 줘야죠.”
“그래요. 그땐 뜻밖의 그 일이 하늘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 도토리가 떨어진 것임을
알려줘야 해요. OO님이 오늘 느낀 그 불안은
OO님의 목소리가 아니에요.
그 조그만 병아리가 떠드는 소리예요.
담번에 또 그런 소리가 속에서 올라오면
이 녀석이 또 제대로 안 보고 떠드는구나!
알아차리고 달래주시면 돼요.”
OO님
“네, 꼭 그렇게 한 번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OO님은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진
남편을 만나셨으니 몸은 좀 힘들어도 큰
축복을 확인하는 순간이 바로 지금입니다.”
라고 하고 마무리했습니다.
남편분이 전화를 다시 받아서 몇 달 만에
아내가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며 고맙다고
하신다. 나도 그 남편분이 내 환자를
든든하게 지켜주어서 고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을 달래고 안심시켜서 치료하려면
환자를 3~4명 치료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온갖 대학병원이나 큰 병원을 다 다녀보고
온 분이라 어디 보낼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제 입장만 생각하면
저희 병원을 그만 오시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날은
“왜 내가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답답한 것은 환자나 보호자분이지 제가 아닙니다.
이 분을 한 번 진료하려면
저희 데스크 직원들이나 간호팀원들이
오래 기다리느라 화가 난 환자분들을 달래느라
이만저만 힘든 것이 아닙니다.
난감한 얼굴로 자꾸 저에게 재촉을 합니다.
이렇게 진료를 보는 것 때문에
그렇게 놓쳐버린 환자분들이 버스 한 대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그분들은 갈 데가 있지만
이 분은 갈 데가 없으니…
그럴 때 제가 이 환자분을 대하는 마음이
어쩌면 깨달은 성인들이
저같이 어두운 사람을
대할 때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연민…
높은 지혜와 깊은 통찰을 갖고도
평범한 언어로 말해내야 하는 어려움.
그것이 깨달은 분들의 사정이 아닐까?
그분 사정이 안타까워
도리어 내가 약간 비굴모드 내지는
달래야 하는 상황…
그런다고 그분이 제 속을 다 알진 못하겠지만
어떻게든 그분이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고통이 없기를…
내가 만나는 모든 생명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꼬옥 안아주기를…
매 순간 즐거울 수는 없어도
매 순간 내 속에서 올라오는 저항을 알아차리길…
그 저항 또한 기억에 사로잡힌 피해자임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침입니다.
Embrace every single moment in front of you!
That’s the way LIFE goes.